연중 29주간 화요일. 에페 2,12-22; 루카 12,35-38
월요일은 신부님, 수녀님들의 휴일이라고 하지요? 그래서 예전에는 국기의 대한 맹세처럼,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하며’, 기필코 노는 날로 삼았습니다. 등산도 가고, 자전거도 타고, 운동도 하고, 여러 가지를 해 봤습니다. 하지만 늘 그 다음 날인 화요일이 다가오면, 후유증에 시달리곤 했습니다. 안 쓰던 근육을 쓰니 몸도 뻐근하고요. 마음도 피곤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휴식의 날은, 무언가를 시도하고 또는 도망가는 날이 아니라 ‘삶의 회복의 시간’이었음을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요. 그러다가 몇 번 아팠던 날들을 보내면서, 점차 제 몸과 마음이 저 자신에게 보내는 신호에 귀를 기울이게 됐습니다. 사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건강하길 바라지만, 우리 같은 신앙인들은 너무 건강하면 안 좋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너무 몸과 마음이 쌩쌩하면 남의 아픔을 이해하질 못하고요. 자신의 아픔도 잘 바라보려 하지 않습니다. 예전의 좋았던 시절만을 떠올리기 때문이지요. 그런 우리에게 바오로는, 예전의 기억을 떠올려주면서 어떻게 가야 할 지를 알려주는데요.
“형제 여러분, 그 때에는 여러분이 그리스도와 관계가 없었고,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으며, 이 세상에서 아무 희망도 가지지 못한 채 살았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 때 그 시간은 자신이 뭘 해야 할 지 조차 몰랐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주님을 알게 되면서 “십자가를 통하여 양 쪽을 한 몸 안에서 하느님과 화해시키시어 그 적개심을 당신 안에서 없애셨습니다.” 라는 참 평화를 말씀해주십니다. 모두들 평화를 바라지만 바라는 바가 이뤄지려면 해야 할 뭔가가 있습니다. 복음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있는 종들!” 바로 준비의 자세입니다. 사실 뭔가를 준비하려면 나중에 다가올 것을 대비하는 시간이어야 합니다. 당연히 대비하는 사람은 현실도 잘 살지만 다가올 미래를 준비합니다. 그런 사람에게 미래란, 더 이상 불안함이 아니지요. 물론 예상한 것과는 다르게 돌아갈 수 있을지 언정, 그것을 바라보는 태도는 전처럼 당혹스럽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어제는 날도 쌀쌀했고 몸도 으슬으슬했기에 평소보다 일찍 기도초를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뭔가를 하는 것보다 당신 안에서 쉬는 것이 참 좋다.’ 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러면서 해야 할 것들이 보이게 되었는데요. 마치 가만히 서 있어야만 흔들리는 나침반에서 가리켜주는 방향을 알 수 있듯이 말입니다. 우리도 주님 안에서 삶의 방향을 잘 잡아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