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31주간 토요일. 필리피 4,10-19; 루카 16,9-15
문득 거울을 보게 되었습니다. 가만히 보노라니 얼굴 양미간의 주름도 깊게 패였고, 코 옆의 팔자 주름도 보입니다. 40대는 얼굴에 책임을 지는 나이라는데, 나이만 먹었지 철없는 제가 보였는데요. 그러면서 제가 청소년기를 거치며 그동안 어떤 선택을 어떻게 했왔는가?를 보게 되었습니다. 지금부터 드리는 이야기는 온전히 저의 이야기이기에, 제 방법이 여러분과는 다를 수 있음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즉 부르심은 같지만 하느님을 만나는 체험은 다 다르듯이 말이지요...
예전 빳빳한 노란 종이로 된 주민등록등본 양식에는 집주소를 쓰는 칸이 10개인가 12개 정도 있었습니다. 어릴 때 제 집 형편은 그 칸을 다 채우고도 모자라 다음 종이가 필요할 지경이었습니다. 이런 저는 무녀독남으로 자랍니다. 위아래 없이 컸으니 버릇없게 컸을 것이 당연했지만, 집이 가난했기에 무엇을 사달라면 얻기보다는 ‘거절’ 이라는 답변으로 돌아오기 일쑤였습니다. 처음에는 때를 써보기도 했지만 점점 요구를 하면 안 된다는 현실에 적응하기 시작했고, 결국 제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아이가 아니라 ‘다른 차선의 방법은 무엇일까?’ 에 촉각을 세우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누구는 이런 저를 비겁하고 용기 없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저는 다분히 현실적 차원에서 가능한 것을 선별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어릴 때 누구라도 한 번씩 한다는 신발을 짝짝이로 신기를 하지 않는 동네 유일한 아이가 되면서, 모든 것을 점검하고, 확인하고, 정공법으로 대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사람들은 이런 저를 가까이 하지 않지요. 숨은 생각이 어떻게 보이건, 일단은 깐깐하고 까칠하게 보이니까요. 너무 꼿꼿하면 부러진다는 말도 있지만, 저는 비록 부러지더라도 제대로 사는 것에 목숨을 걸게 됩니다. 원래는 되게 덤벙대는 아이였지만, 원래 정해진 보직도 아닌 군대에서 행정병을 하고, 짧은 직장생활 하면서 저는 점차 규칙을 통해 정돈하는 삶이 뭔지를 알게 되었고, 신학교를 통해 그 삶의 정점을 찍게 됩니다. 당시 42명이 입학하였지만 끝내 살아남아 신부가 된 입학 동기는 고작 22명이었습니다. 그런 현실을 보며 ‘사회성 없는 나를 선택해주신 하느님께 내가 무엇을 드려야 할까?’ 에 대해 묻게 되었습니다. 그 후 10여 년이 지나 삶의 원칙을 세웁니다....
필요한 거 외에 일용품을 사지마라.
생활을 단순화해라.
술을 석 잔 이상 마시지 마라.
나의 잘남을 떠벌이지 마라.
잡다한 자리에 다녀온 후 낮잠으로 새롭게 하라.
깨달음과 집중을 위해 이성 수도자와도 특별한 사이를 만들지 마라.
나를 가르쳐 준 이에게 감사하라.
순간마다 깨어있음을 시로 표현하라.
다른 이의 수고를 끼치지 마라, 그러면 멀어진다는 것을 명심하라.
필요할 때에만 연락하지 마라, 뜬금없이 안부를 물어라.
바오로가 오늘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나는 비천하게 살 줄도 알고, 풍족하게 살 줄도 압니다. 배부르거나 배고프거나 넉넉하거나 모자라거나 그 어떠한 경우에도 잘 지내는 비결을 알 수 있습니다. 나에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그가 얻었다는 비천함과 넉넉함을 동시에 사는 방법이란 무엇이었을까요? 저는 그가 가만히 들여다보는 통찰 속에서 답을 찾았던 것 같습니다. 사실 그는 처음에는 잘 나가는 바리사이요, 로마 시민권자였습니다. 만약 그가 가졌던 것에 도취되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아는 그가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고린토2서 11장에 보면 자신의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유다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를 감한 매를 다섯 번이나 맞았고, 몽둥이로 맞은 것이 세 번, 돌에 맞아 죽을 뻔한 것이 한 번” 이라고요. 오늘 복음에 이런 말씀이 나왔습니다. “그러니 너희가 불의한 재물을 다루는 데에 성실하지 못하다면 누가 너희에게 참된 것을 맡기겠느냐? 또 너희가 남의 것을 다루는 데에 성실하지 못하면 누가 너희에게 너희의 몫을 내주겠느냐?” 온전히 사적인 삶을 살았던 제가 신부가 되면서 점차 공적인 것을 다루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그러면서 공적인 사람이 해야할 것이 뭔지를찾아갑 니다.
여기서 물론 우리가 고집불통이 되어서는 안되겠지만 이 삶을 살면서 느끼게 되었습니다. 두려워하지 않고, 남의 눈치에 휘둘리지 않으며, 참되게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고 선택해야 한다고요. 그게 비록 남의 눈에는 똥고집처럼 보이고, 융통성 없는 답답한 사람처럼 보이더라도요. 이제 여러분은 어떤 삶을 사시겠습니까? 저는 이렇게 커왔습니다. 여러분도 나름의 시간을 겪으시면서 자기만의 방법을 터득하시는 시간이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선택에 후회는 없으십니까? 후회가 없다면 혹시 굳어있는 것은 아닌 지 보시고요. 후회가 있다면 더 이상 지체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