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31주간 수요일.

2014. 11. 4. 오후 11:3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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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31주간 수요일. 필리피 2,12-18; 루카 14,25-33

  혼탁한 세상에서 살아남은 방법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쉽사리 휩쓸리지 않고 참다운 것을 펼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실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이 이런 것들이지요. 그런데 신자라는 우리도 가만히 보면, 바깥세계에서 쓰는 방법을 그대로 가져다가 쓰려는 시도를 합니다. 사실 그동안 교회도 그렇게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교회도 유행에 흔들리고 과오도 저질렀었습니다. 사실 밖의 것이 우리를 흔들어댈수록 우린 더 조용하게 지켜봐야만 합니다. 가만히 관찰하면서 응시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누가 탑을 세우려고 한다면 공사를 마칠만한 경비가 있는 지 먼저 앉아서 계산해 보지 않느냐?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려 가려면 이만 명을 거느리고 오는 그를 만 명으로 맞설 수 있는지 먼저 앉아서 헤아려 보지 않느냐?” 뭔가를 하길 바란다면 먼저 가만히 응시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동안 교회에서도 전통적으로 가르치던 방식이 있었습니다. 그 방식은 관찰, 판단, 실천입니다. 관찰이란 주의를 다해 깊게 들여다보고, 거기서 말하는 것을 우선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관찰하여 보여진 것을 토대로 판단은 식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아들인 것이 이 교회에 부합하는 지를 바라봅니다. 마지막으로 실천은 그 사안에 대해 깨달은 바를 행동으로 옮기는 일입니다. 비록 그것이 논리적이지 않더라도 말이지요.

 주님께서 앞서 비유를 드신 이유도 십자가를 지기 위해서는 먼저 가만히 성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성찰을 통한 조건이 그다지 논리적이지 않습니다. 그저 갖고 있던 생각과 끌어안고 있던 것을 놓아라 하시니까요. 하지만 내 안에 욕심과 더러움이 끼어있는 지 먼저 들여다 볼 때, 당신의 사명을 제대로 시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의 상태는 그야말로 범벅상태입니다. 좋은 의도와 자기가 바라는 것이 뒤섞여져 있어 올바른 판단이 어렵고 행동하기 힘듭니다. 그런데 대다수가 무시하거나 이를 모르고 넘어가기 일쑤입니다. 그러다보니 교회라는 곳이 마치 서비스센터처럼 자기가 바라는 무언가를 해주는 곳이어야 하고, 주님의 복음 말씀은 옛날 얘기처럼 따분하게 여깁니다. 오늘 독서에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생명의 말씀을 굳게 지니십시오.” 여러분에게 생명의 말씀이란 어떤 것입니까? 그게 뭐길래 지니라 하실까요? 그동안 배웠던 것을 잘 되새겨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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