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34주간 수요일. 묵시 15,1-4; 루카 21,12-19
저는 개인적으로 잘 준비하는 편입니다. 강론도 꼭 써서 하고 있고, 뭔가를 하기에 앞서서 계획에 대한 사항을 연습장에 여러 번 쓰면서 정돈해 나갑니다. 그리고 강의를 하게 될 때에도 수십 번을 고칩니다. 마치 회사에서 프리젠테이션 하듯이요. 그래야 시간에 맞추어 군더더기 없이 계획된 바를 소개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러한 인간적인 정돈과 노력이 항상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가끔씩 깨닫곤 하는데요.
오늘 복음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너희는 명심하여 변론할 말을 미리부터 준비하지 마라. 어떠한 적대자도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언변과 지혜를 너희에게 주겠다.” 정말 가끔씩은, 계획된 의도와 다르게 저도 생각하지 않은 좋은 말을 할 때가 있습니다. 강의 중이나 갑작스런 질문을 받았을 때나 미사 끝에 하는 멘트 속에서 말이지요. 아마 보통의 경우였다면 당황했거나 적당하게 얼버무렸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 그럴 수 있었던 이유를 찾아보면 다음과 같은 답을 얻게 됩니다. ‘평소 그 문제에 관하여 계속 생각을 해왔기 때문’ 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그 문제에 관한 적절한 비유, 설명, 예시 등이 저도 모르게 나온 것 같은데요. 물론 이것만 믿다가 자신의 감(感)에 도취된 나머지 분위기와 전혀 맞지 않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평소 자신을 돌보았을 때, 계획보다 더 나은 상황을 맞이하기도 하는데요.
요즘 각 대표를 뽑는 시즌입니다. 예전 다른 본당에 있을 때 일입니다. 20대 여성 청년이 회장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에 당선된 이 친구는 무조건 울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신부님, 수녀님이 ‘주님께 맡기면서 해나가면 잘 이뤄질 것이다. 이것은 혼자하는 것이 아니야.’ 라고 이야기를 해주어도 막무가내였습니다. 아직 어린 이유도 있었지만 자신이 새로운 것을 만나면서 발생될 수 있는 다른 차원의 힘을 만나기란 아직 역부족이었을까요? 화답송에 이런 후렴이 나왔습니다. “전능하신 주 하느님, 당신이 하신 일 크고도 놀랍사옵니다.” 여러분 그동안 뭐가 크고 놀라운 지 만나보셨습니까? 이것은 체험을 해야만 알 수 있는 상황이기에 더 이상 설명이 불가한데요. 마치 강을 건너 본 사람과 그 강을 그저 바라본 사람과의 차이라고나 할까요? 좋은 체험은 우리의 신앙을 살린다는 사실을 안다면 더 이상 머리로 하는 신앙에 머물러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 방법은 오히려 당신께 다가가는 것을 가로막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