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1주간 화요일. 이사야 11,1-10; 루카 10,21-24
제가 신학교를 다니던 2000년도 초반에 들었던 이야기입니다. 어떤 수녀원에서 설문조사를 했답니다. 당시 다른 수녀원들은 다들 현대식으로 개량된 수도복을 입었지만 그 수녀원은 유독 다른 수녀원과 달리 아직도 고풍스런 수도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머릿수건이 시야를 가려서 활동하기 어렵다는 의견들이 나왔고, 수도복의 개량여부에 대하여 회원들끼리 설문조사를 하였답니다. 그러나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현대화된 수도복으로의 전환을 반대했던 분들은, 종신서원 이상을 받은 수녀님들이 아니라 오히려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분들이었다는데요. 이른바 옷을 보고 들어왔다는 얘기였는데요. 사실 이런 모습은 우리 주위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성당을 다녀도 으리으리한 큰 성당을 다녀야 한다고 믿거나, 주일미사는 꼭 주임신부님이 집전하는 미사를 가야지, 나머지 신부님들이 하는 미사는 미사가 아니라는 등의 이야기를 하는 경우를 듣는데요. 그야말로 어이상실인 경우를 참 많이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분들이 오늘 말씀을 들었다면, 주님의 의향이 자신들의 생각과 다르게 돌아간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우린 압니다. 예수님이 아기로 오셨다는 사실을요. 하지만 이것은 대다수 사람들이 원한 방식이 아니었지요. 뭔가 있어 보이고, 웅장하고, 스케일이 큰 것만을 바라는 이들에게 예수님의 방식은 초라해 보일 뿐입니다. 그래서 당신은 일부러 감추십니다..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버지께서 누구이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교우분들중에도 활동만을 하고 기도에서 만날 수 있는 관상적인 조용함을 꺼리는 이들이 있습니다. 활동이 그들 자신을 살려준다고 믿고 있지요.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보입니다. 활동의 움직임은 많지만 공허해 보인다는 사실을요. 기도 없는 움직임이기 때문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좀 기도를 하신 분들은 그런 게 다 보입니다. 다만 본인만 모를 뿐이지요. 또 얘기를 해주어도 잘 못 알아듣던데요. 여기 계신 여러분은 주님의 비밀스런 신비를 조금씩 깨달아가는 분들입니다. 그러기에 오늘도 추운 날씨를 뚫고 오셨잖습니까? 하느님의 신비는 누구에게나 열려있지는 않습니다. 그릇이 준비된 이들에게만 보입니다. 준비되신 여러분에게 복음 말씀을 다시 한 번 들려드립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려고 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들으려고 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