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2주간 금요일. 이사야 48,17-19;마태 11,16-19
미생이란 만화나 드라마도 그렇구요. 얼마 전 개봉한 ‘카트’ 라는 영화 안에서 빚어지는 마트측과 직원들간의 갈등에서 사회가 만들어 놓은, 갑과 을의 횡포의 현장을 봅니다. 있는 사람은 더 가지려고 진상 짓을 하고 있고요. 없는 분들은 아픔을 어디에도 하소연 하지 못한 채 상처를 지니고 사는데요. 이런 모습은 교회 밖에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그대로 이어짐을 보곤 합니다. 교회가 뭔가를 얘기하고 가르치는 것이, 자칫 사회에서 하고 있는 형태처럼 보여서 싫다는 분들도 만나는데요. 이런 사회에서 교회가 말하는 가르침은 공허한 외침일까요? 교우분들의 심정을 몰라주는 처사일까요?
오늘 독서에서 하느님은 말씀하십니다. “아, 네가 내 계명들에 주의를 기울였다면, 너의 평화가 강물처럼, 너의 의로움이 바다 물결처럼 넘실거렸을 것을” 복음에서 예수님은 “이 세대를 무엇에 비기랴? 장터에 앉아 서로 부르며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과 같다. 우리가 피리를 불어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가슴을 치지 않았다.” 대림절은 주님을 기다리면서 내 위치에서 그 분을 잘 준비하는 것입니다. 상황이 좀 괜찮은 분들은 ‘혹시라도 욕심을 부리며 살지 않았는가?’ 를 바라봐야 하겠구요. 힘든 분들은 ‘내 요구가 관철되기만을 바라지 않았는가?’ 를 살펴야 할 것입니다. 우리들은 세속사람들입니다. 저는 세속사제이구요. ‘세속’ 이란 표현이 꼭 부정적인 표현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이 만드신 것이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세상’을 부정한다면 하느님의 창조물도 거부하는 꼴이 되겠지요. 그러기에 우린 밖에서 살던 방식을 교회 안에서도 그대로 적용시키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의 방법으로 이 세상을 변화시켜가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중에는 힘이 있거나, 지혜가 있거나, 돈이 있거나, 또는 뭔가를 할 수 있는 능력이 되는 분들이십니다. 없는 분이라도 자기만의 달란트를 통해 무언가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계명과 주님의 의로움은 바로 우리를 통해 이뤄질 수 있음을 알게 됩니다. 당신의 가르침이 참으로 우리에게 자유와 평화를 준다고 믿는다면, 한 번 그렇게 행하면서 살아봐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세상은 변화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