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3주일 자선주일

2014. 12. 13. 오후 3:4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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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3주일 자선주일. 이사 61,1-11; 1데살 5,16-24; 요한 1,6-28

  여러분의 사랑 방법은 어떠하십니까?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만 사랑합니까? 아니면 내가 해보지 않았던 사랑까지도 하실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가끔 우린, 내가 행하는 사랑의 방법과 형태에 대해 들여다 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가진 사랑이, 내가 행한 사랑이, 내가 예상하고 계획한 범위 안에서만 나오게 되다보면, 되게 구차한 사랑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일단 예수님이 보여준 사랑방식은 세상에 이런 사랑방식도 있어?’ 하고 놀랄만한 방법이었습니다. 우선 구유에 가난하게 오셨고요. 자기를 바쳤던 십자가의 사랑만 보더라도 남들이 예상한 범위의 사랑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예상을 벗어났기에 사람들에게 감동을 가져다 주는데요.

  오늘 말씀이 그렇습니다. 세례자 요한이 갑자기 나타나 세례를 베풉니다. 빛을 증언하여 자기를 통해 모든 사람이 믿게 하려는 것이었다.” 자기를 통해 하느님의 뜻이 전해지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궁금해 합니다. 요한이 율법을 정규과정으로 배운 사람도 아니었고요. 학력도 없어 보이고, 출신성분은 아버지가 사제인 즈카리야이니까 좋은 건 알겠지만, 삶은 그야말로 야인(野人)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시스템에 고정되어 있던 사제들과 레위인들은 당신은 누구요?” 하고 묻습니다. 일단 율법학자들이 하는 모든 질문 자체가 시스템에 갇힌 질문이었기에 그는 아니다 라고만 답합니다. 즉 질문 자체가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요한은 떳떳합니다. 꿀릴 것 없이 대답을 또박또박 합니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신데 나는 그분의 신발끈을 풀어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즉 그분을 준비하기 위해 왔다고요. 그렇다면 성탄이, 기쁜 크리스마스가 되려면 뭐가 필요할까요?

  오늘은 자선주일입니다. 연말이면 구세군 종이 울리고, 모금을 하고, 불우이웃을 생각하는 것이 어느 새 당연하게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에 자연스레 잊고 있었던 사실이 있습니다. 누군가를 돕는 일에는 때와 계절과 장소가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추운 겨울이면, 연말이면, 이 때 만이라도 도와야 한다는 손길이, 어느 사이엔가 마치 이 때만 해야 하는 것처럼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가 않지요. 오늘 2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성령의 불을 끄지 마십시오. 모든 것을 분별하여, 좋은 것을 간직하고 악한 것은 무엇이든 멀리하십시오.” 성령의 불은 언제 타올라야 할까요? 때와 장소를 초월해야 하지요. 언제나 타올라야 합니다. 성령은 바람과 같아서 잡을 수도 없기에 준비를 잘 하면서 잡았던 그분의 마음상태를 헤아려야 합니다. 그럴 때 성령이 실생활에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이런 초월의 모습은, 이미 주님의 삶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그 분이 일부러 인간의 역사 안에 오셨다가, 다시 당신 자리로 올라가신 신비는, 우리의 생각으로는 다 헤아릴 수 없는 범위입니다. 하지만 아예 불가능한 것도 아닙니다. 하느님이 사람이 되셨다는 사실 속에서 우리도 그 분을 따라 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 그 분을 따라 해야 할 때는 언제일까요? 그 때란 내 범위를 넘어서야만 하는 사랑을 만났을 때가 그 시작이 됩니다. 물론 여러분보고 할 수 없는 것을 하라고 강요하는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것은 절대 아닙니다. 하지만 가능성을 일부러 닫아놓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지요.

  사람들 대다수가 그렇습니다. 사랑의 범위를 제한적으로 열어놓고 그 안에서만 행하려 합니다. 당연히 좋은 사랑이 흘러넘치기보다 자기가 다치지 않으려고, 손해 보지 않는 사랑이 나오게 됩니다. 예를 들자면 이렇지요. 가족끼리도 서로의 이익을 생각합니다. 부부가 서로를 이용하고, 자식을 내 맘대로 부리고, 친구에게는 필요할 때만 연락하고, 당장 내가 손해 볼 것 같으면 아무 것도 빌려주거나 열어주지 않는... 그런 모습을 이미 주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으니까요. 무릇 제한적인 사랑은 사람을 가두어 놓습니다. 당장 손해는 보지 않기에, 잃는 것은 없겠지만 실은 얻는 것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분의 사랑의 방법은, 당장에는 잃는 것처럼 보였지만 나중에는 모두를 위한 사랑이었음을 우리는 압니다. 1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마음이 부서진 이들을 싸매어 주며,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갇힌 이들에게 석방을 선포하게 하셨다.” 나의 사랑이 때와 장소를 가리는 사랑이 되기보다는 그 분을 닮아 행할 때, 나의 사랑은 커져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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