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3주간 토요일. 이사야 7,10-14 ; 루카 1,26-38
오늘은 하느님께서 무언가 일을 하시려고 하십니다. 그런데 여러분께 여쭙겠습니다. 하느님이 무슨 일을 하려고 하실 때, 꼭 사람의 도움이 필요할까요?
미사를 드릴 때 경문으로 쓰고 있는 미사 통상문 안에는 ‘거룩하시도다’ 를 바치기 전에, 신부님이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면서 길게 읽은 감사송이란 것이 있습니다. 그 중 연중 평일 미사에는 이런 경문이 실려 있습니다. “아버지께는 저희의 찬미가 필요하지 않으나, 저희가 감사를 드림은 아버지의 은사이옵니다. 저희 찬미가 아버지께는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으나, 저희에게는 주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에 도움이 되나이다.” 그런데 그냥 건성으로만 들으면 ‘아~ 하느님은 우리가 없어도 다 하실 수 있는 분이니까 우리는 할 일이 없겠네 뭐~’ 할런지도 모릅니다. 이미 성경에서 비슷한 구석이 나오니까요. 모세가 이집트 탈출을 위해 애를 썼지만, 결국 하느님이 내린 10가지 재앙때문에 파라오가 견디지 못해서 나올 수 있었고요. 예수님의 부활도 누가 부활시켜 준 것이 아니라 “돌은 이미 굴러져 있었다” 는 말씀처럼 주님의 수난부터 시작하여 십자가 고통에다가 부활까지, 어느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은 채, 당신 스스로 직접 돌을 굴려내고 부활하셨으니까.. 우리가 필요 없지 않을까? 할 런 지도 모릅니다.
얼마 전 ‘엑소더스’ 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물론 감독이 바뀌었기에 우리가 예전에 보았던 ‘십계’ 때와는 다른 표현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예전 영화 십계에서 십계명은 하느님이 직접 불을 내려 새겼지만, 이 영화에서는 하느님으로 보이는 아이가 모세에게 이야기를 꺼냅니다. "너는 나와 참 달라...그래도 이렇게 오랫동안 대화를 하고 있지" 그 때 모세는 직접 십계명을 조각칼로 새기고 있습니다. 다시 하느님이 말씀합니다. "네가 원하지 않으면 쓰지 않아도 돼.." 하지만 이미 하느님과 모세, 둘은 뜻을 같이하고 있음을 보았는데요.
오늘 독서에서는 “그러므로 주님께서 몸소 여러분에게 표징을 주실 것입니다.” 하고 있고요. 복음에서는 성모님께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하십니다. 그러면서 이런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내가 하는 일마저도 이미 당신 뜻이었으며, 판단이 필요할 때는 나의 느낌을 통해 식별과 분별의 때를 감지하게 허락하신다" 는 것을요. 즉 당신은 일하시고...난 성장하고...둘 다 이기는 게임을 제시하시고 있었습니다. 사실 우린 그렇게 쓸모있는 존재는 아니지만, 굳이 우리를 참여시키면서 우리가 그것을 만나게끔 초대하시는 분임을 보며 당신의 사랑을 느끼게 되었는데요. 여러분은 어떠신지요. 그 초대에 잘 응하고 계십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