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아녜스 동정 순교자 기념일. 히브리 7,1-17; 마르코 3,1-6
처음 신부가 되고나서 정신이 하나도 없을 때였습니다. 이론적으로 배웠던 것을 하나하나 실천에 옮기자니 긴장감을 가졌었고, 마음의 안정도 없었을 때였는데요. 그러던 차에 주임신부님과 식사를 하다가 질문을 던졌습니다. “신부님 만약에 예수님이 갑자기 재림하시면 저희는 어떻게 되는거죠? 그러면 막 신부가 된 저는 미사도 못하고, 본당에서 계획한 것도 어그러질 수 밖에 없을텐데요” 그러자 주임 신부님은 “그런 걱정은 자네가 하는 게 아냐~ 주교님이 하실 걱정이니까 신경쓰지 말라고..” 생각해보니 정말 그랬습니다. 저는 그저 맡겨진 일을 잘 하기만 하면 될 텐데, 괜히 사서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요. 사실 이런 불안과 걱정은 저만 하는 것은 아니지요. 여러분도 많이 하시는데요. 고해소에 들어가 있으면 교우분들의 복잡다단한 불안과 걱정꺼리를 듣습니다. 계속 같은 죄에 빠져 수렁에 빠진 느낌을 가지시던데요. 그럴 때 저는 되묻습니다. “그러면 형제님의 삶의 기준이 뭐에요?” 대다수가 단순히 입에 발린 영혼없는 모범답안 - 예수님의 계명대로 산다는 것 등 - 을 말하거나, “가족이요” 등의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것들에 자신을 의지하고 사시던데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그들의 마음이 완고한 것을 몹시 슬퍼하시며 그 사람에게 손을 뻗어라” 하시며 고쳐주시는데요. “고통에는 중립이 없다” 고 하신 프란치스코 교황님 말씀처럼 누군가를 사랑하는 행동에는 주저함이 없어야 하는데요. 그래서 1독서에서 사제 멜키체덱 이후에 나올 분을 일컬으며 “그분께서는 육적인 혈통과 관련된 율법규정이 아니라 불멸하는 생명의 힘에 따라 사제가 되셨습니다.” 처럼 현실의 부족하고 힘겨운 가운데에서도 생명의 힘이 나를 휘감을 때, 나는 나를 살릴 수 있고 상대방도 도울 수 있는데요.
오늘은 성녀 아녜스 기념일입니다. 14살의 어린 나이에도 힘과 압박에 굴복하지 않고 위대한 신앙의 실천을 보여주셨습니다. 해야 할 것을 선택하면서요. 그러니 너무 많은 걱정에 휘둘리지 마십시오. 마태오 복음 6장 27절 말씀을 드리며 강론을 마치겠습니다. “너희 가운데 누가 걱정한다고 해서 자기 수명을 조금이라도 늘릴 수 있느냐?” 먼저 해야 할 것을 잘 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