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공현 전 토요일

2015. 1. 3. 오전 12: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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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공현 전 토요일. 요한 1서 2,29-3,6; 요한 1,29-34

  중고등학생 중에서 특히 수학을 포기하는, 일명 수포자 비율이 고3 학생만 60%랍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재미가 없어서입니다. 왜 재미가 없을까요? 그건 냅다 문제만 풀기 때문입니다. 원래 수학이 생긴 이유는 실용성에 있었습니다. 가진 땅에 얼마나 효율적으로 풀을 심고 나무를 심을 수 있을까? 땅을 놀리지 않을 수 있을까? 가 수학의 시작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와서 ?” 라는 물음에 답을 못하는 지경이 되었으니 재미가 없는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우리의 신앙도 그렇습니다. 나는 왜 믿고 있는가? 왜 믿어야 하는가?” 에 대한 근본적인 대답이 내 안에서 나오지 못한다면 수포자들과 다를 바가 없는데요.

  오늘 세례자 요한은 솔직한 고백을 합니다. 나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다.” 사실 대단히 부끄러울 수 있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런 부끄러운 고백은 이미 성경에서 여러 번 나왔었습니다. 요나가 하느님의 명을 피해서 도망가다가 고래 뱃속에 들어간 내용이나, 힘세고 지혜로웠던 삼손, 다윗, 솔로몬이 여자에 취했던 이야기나, 3번이나 주님을 배반한 베드로, 주님의 제자를 잡으러 다닌 바오로 등. 이런 이야기는 숱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 부끄러울 수 있는 과거를 다 까발립니다. 그러면서 결국 이런 것을 알게 해주죠. 과연 나는 보았다. 그래서 저 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내가 증언하였다.” 그 당시는 몰랐었는데 시간과 체험 후에야 알게 되지요. 그래서 오늘 독서에서도 이런 말씀이 나왔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될 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 분께 이러한 희망을 두는 사람은 모두 그리스도께서 순결하신 것처럼 자신도 순결하게 됩니다.” 라고요.

 비록 지금은 다 알지 못하지만 그 분이 말씀하신 약속을 믿고 그렇게 행해 볼 때, 그제서야 풀리는 것을 알게 됩니다. 마치 막상 볼 때는 어려워 보였지만 공식에 대입하여 차근차근 풀다보면 답이 나오는 그런 경지라 할까요? 잘 알지 못했던 그 분이었지만, 나를 통하여 이뤄지는 그 분의 신비를 체험하다보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을 느끼게 되고 그 안에서 희망을 얻게 됩니다. 천천히 걸어야 풍경이 아름다운 것도 느끼는 법입니다. 그런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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