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대 바실리오와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 학자 기념일.

2015. 1. 2. 오전 11:56:16

글자

성 대 바실리오와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 학자 기념일.

 요한 1 2,22-28; 요한 1,19-28

  많이 배운 사람일수록 어떤 것에 대한 확신을 가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처음 레포트 쓸 때처럼 이런 학자, 저런 학자의 의견을 나열하기는 하지만 자기 의견은 없는 경우입니다. 권위있고 유명하다는 남의 의견을 풀어놓기에만 급급할 뿐, 자기 것은 없습니다. 다 맞는 것처럼 보이니까요. 게다가 세상은 변합니다. 법도 변하고 정책도 변합니다. 이것이 최선인 줄 알았는데 조금 지나니까 그건 옛날 일이랍니다. 어떤 것에 푹 잠기지 못하니까 장사를 하더라도 계속 업종을 변경하며 시세의 변화에만 신경씁니다. 당연히 나만의 기술을 가질 여유가 없습니다. 신앙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과 함께 살아가기에 뭔가에 확신과 믿음을 가지지 못한다는 교우들을 많이 만납니다. 하지만 확신과 믿음을 가지려면 사실 무엇이 필요한 줄 아십니까? 바로 의문입니다. 의문과 의심은 다릅니다. 국어사전에는 이 둘이 비슷한 뜻을 가지지만 우리들의 경우 종점은 다릅니다. 의심의 종점은 보통 자기가 만든 생각으로 끝나게 되고요. 의문의 종점은 처음에는 자기 생각으로 시작했으나 좀 더 헤아리고 알아본 후, 참된 것에 안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확실하게 믿기 힘든 하느님의 섭리에 대해, 의문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꼭 나쁜 행동이라고만은 말할 수 없는데요.

  오늘 복음에 유다인들은 세례자 요한에게 계속 질문을 합니다. “당신은 누구요?하면서요. 하지만 계속 아니다 라고만 답합니다. 그러자 이내 이렇게 묻습니다. 세례는 왜 주는 것이오?” 하지만 답변은 에 대한 답이 아닙니다. 그냥 나는 물로 세례를 준다 고 하며 내 뒤에 오시는 분 에 대해 언급할 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성경을 읽으면서 나중에야 알게 됩니다. 요한은 그 분을 위해 먼저 오신 분이라는 것을요. 그래서 우린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드는 의심으로 나중에 나의 삶을 마칠 경우 결국 얻는 것은 없다는 사실입니다. 비록 그게, 처음에는 미심쩍은 의심이어도 뭔가 발견하지 못한 가능성을 열어둘 때, 그것이 참된 진리로 접근하는 길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독서에서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 그 상태를 보존하고 있으므로.. 그 분 안에 머무르십시오 라고 한 것도 당장에는 답이 나오지 않지만 계속 헤아릴 때 지금과 다른 경우를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기념일을 맞이한 바실리오 성인, 그레고리오 성인 둘 다 은수생활을 했습니다. 홀로 사막에 가서 살았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닐 것입니다. 참 외로웠을 것입니다. 진리에 대한 의문도 있었을 것이구요. 하지만 이들은 그런 시간을 겪었기에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할 지를 알았습니다. 여러분도 그런 시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