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3 주간 화요일 히브리 10,1-10;마르 3,31-35
우리 천주교에서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서로 가리키며 형제님, 자매님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러한 풍습은 이미 초대교회 때부터 실천되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당시 안 믿던 사람들은 우리 교인들을 보면서 ‘어떻게 집안에 형제가 그리 많을 수 있나?’ 며 의아해 했다고 하는데요
오늘 예수님은 바쁘게 사람들을 가르치며 군중들에게 설교를 하십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 하나가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스승님을 찾고 있습니다.” 고 말하자 “누가 내 어머니이고 형제들이냐?” 라고 하시며 주위에 앉은 사람들을 가리키며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이들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이다.” 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말씀은 당신이 무엇하러 오신 분인가를 알려주는, 주님의 신원성을 알려주는 말씀이라 할 수 있겠는데요.
우린 공동체의 일원이기에 서로를 형제요, 자매라 부르고 또 그렇게 가르칩니다. 하지만 우린 서로를 얼마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오히려 마치 한 집안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말 안 듣고 고집만 부리는 형제, 자매라 생각하지는 않으십니까? 한 집안의 형제, 자매도 나와 생각이 다른 부분이 많은데, 하나 된 믿음으로 모였다지만 남들끼리 모여서 만난 우리가 다른 생각과 행동을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겠지요. 그러나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하느님은 놀라운 창조 사업을 보여주십니다. 내가 여지껏 생각하지 못한 부분까지도 건드리시면서 그 사람을 참 형제요 자매로 연결시켜 주시는데요.
오늘 1독서에서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당신께서는 제물과 예물을 원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저에게 몸을 마련해주셨습니다. 보십시오,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구약시대까지는 황소나 염소를 바치며 제물을 잘 바쳤겠다고 싶었겠지만 주님과 더불어 달라집니다. 그런 것을 “당신께서는 원하지도 기꺼워하지도 않으셨습니다.” 면서 당신 자신을 내놓으시는 파격의 제물 바침이 이뤄지는데요. 내가 생각하는 사랑할 수 있는 사람과 이웃은 어디까지입니까? 나도 모르게 그어놓은 선이 나의 한계입니다. 이젠 이걸 넘어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