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요한 보스코 사제 기념일

2015. 1. 30. 오후 11:4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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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요한 보스코 사제 기념일. 히브리 11,1-19; 마르 4,35-41

  요사이 세상은 묵묵히 일하는 사람이 잘 되기보다는 불안함을 조장하는 사람들이 돈 버는 세상같아 보입니다. 젊은이들과 학생들이 힘겨워하는 이유도 이미 뭔가를 가진 이들이 기득권을 안 내주고, 그들의 약함을 인질삼고 있고요. 학원들도 당장 원하는 결과가 나와줘야 하기에, 기본적인 태도나 자세를 가르치기보다는 요령과 잔기술을 습득하기에 바쁩니다. 그러기에 정작 큰 문제에 봉착하면 대책을 못 세우는 요즘 아이들입니다. 사실 우린 다 약한 이들입니다. 그렇다면 영화 명량에 나온 이순신의 대사처럼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 있다면..” 이 가능하려면 뭐가 필요할까요?

  오늘 독서에는 아브라함부터 믿음을 살았던 이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브라함을 일컬으며 그는 어디로 가는 지도 모르고 떠난 것입니다.” 라고 말하고 있고요. 구약성경에 나온 이들은 구세주 예수님에 대해 말만 들었지, 만나지도 못한 채 이들을 모두 믿음 속에 죽어갔습니다.” 라고 말하며 이런 설명을 덧붙입니다. 만일 그들이 떠나온 곳을 생각하고 있었다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하늘 본향을 갈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그들에게 도성을 마련해주셨습니다.” 돌아갈 수 있었던 이들이 굳이 그것을 마다하고 자기들은 이 세상에서 이방인이며 나그네일 따름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라고 살았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기서 우린 그들의 삶이 헛된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구원을 알려준 어미새의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미새가 처음에는 새끼를 위해 먹이도 물어주고 둥지에 적이 침범치 않도록 애를 씁니다만, 결국에는 새끼가 다 큰 것을 보지 못한 채 멀리서 바라보다가 떠나야 하지요. 마찬가지로 구약의 인물들도 약속된 것을 보지 못했기에, 그 사실만을 따진다면 불행할 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지가 않지요. 자기가 살아있을 때 모든 것이 다 이뤄져야 한다고 믿는 요즘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노력과 믿음은 전혀 가늠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 기념일을 맞이한 요한 보스코 성인은, 교도소에서 출감한 아이들과 공장에서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는 이들에게 사랑을 베푼 이였습니다. 그럼 요한 보스코 성인이 손수 일으킨 그 아이들의 성공을 다 맛보았을까요? 그러질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해야 한다 는 소명감이 그를 살렸습니다. 그 소명감은 복음에 나온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미 우린 그분과 함께 있었는데 뭐가 아직도 겁이나고 불안할까요? 묵묵했던 신앙의 선조들과 예수님을 통해 답을 찾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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