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4주간 수요일. 히브 12,4-15; 마르 6,1-6
누구나 겪었습니다. 아무리 그 말이 나를 위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아도, 그 때는 듣기 싫은 소리였다는 것을요. 달콤한 맛이 아니었기에 피하고만 싶었고 도망가는 것이 상책이라고 여겼었습니다. 예~ 그래서 피하기도 했습니다. 도망가기도 했구요. 사과도 하지 않고 뒤에서 원망만 늘어놓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피해보니까, 도망가보니까 어떠셨습니까? 당장에는 그게 정답인 줄 알았는데, 그게 날 위하는 것이라 여겼는데.. 지금에 와서는 꼭 그게 제대로 된 처신이 아니었음을 느끼는 이유는 또 뭘까요? 그래서 오늘 독서도 이렇게 말씀하시는가 봅니다.
“모든 훈육이 당장은 기쁨이 아니라 슬픔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그것으로 훈련된 이들에게 평화와 의로움의 열매를 가져다줍니다.” 우린 신앙인이니까 배운 것을 토대로 풀어보겠습니다. 우린 십자가가 뭔지 압니다. 예수님만 고통 받으신 것은 아니지요. 우리도 지금의 삶에서 각자 짊어지고 가야 할 십자가가 있습니다. 그 자체가 참 고통스럽습니다. 맛은 쓰고 뱉어버리고만 싶습니다. 그러기에 이 시련에 대해 불평만 터뜨릴 뿐, 이해가지 않을 때가 참 많습니다. 특히 신입사원 시절 때는 더 그랬지요. 하지만 그러면서 배웠습니다. 위기에 놓였을 때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 실패를 통해서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하게 되었고, 된통 혼나면서도 당장에는 그게 무언지도 몰랐던 것들을 점차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우린 어른이 되었지요. 어른이 된다는 것, 그것은 지금 느낀 느낌에만 충실한 것은 아닌 것 같은데요.
오늘 주님은 고향으로 가십니다. 주님의 능력을 얻었으니 그 좋은 것을 고향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보여주고 싶으셨겠지요. 하지만 사람들은 지금 주님의 모습을 보기보다는 예전 코 찔찔 흘릴 때 시절만 기억합니다. 얼마 전 동기신부님들과 만남의 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우린 아직도 20대 초반 만나서 서로 느낀 것만 얘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미 우리도 10년 동안 사목을 하면서 나름 발전하고 변화되었는데 그것에 관해서는 왜 보아주지 않는걸까?’ 하고요. 주님의 소외감이 이해가 가더군요. 가까운 사람들을 더 관심있게 봐야겠습니다. 우린 지금도 성장하고 있으니까요. 그걸 봐주어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