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1주간 수요일.

2015. 2. 24. 오후 11: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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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1주간 수요일. 요나 3,1-10;루카 11,29-32

  요사이 제가 맡는 단체원들과 복음 나눔을 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이냐시오 묵상입니다. 원래 이 기도는 한 달 4주간에 걸쳐, 하루에 5~6개씩 복음구절을 나눠주고, 하느님과 주님의 전 생애를 바라보는 기도입니다. 하지만 아직 준비가 되지 않는 교우분들에게는 그런 것이 당연히 힘들지요. 그래서 5개월에 걸쳐 하느님의 사랑, 죄의 용서, 예수님의 탄생과 공생활, 수난과 부활의 신비를 일정한 주제를 놓고 기도합니다. 우리가 보통 읽는 복음은 띄엄띄엄 읽기에 연결이 안되지만 이건 일정한 주제에서 하는 것이기에, 높은 집중이 가능한데요. 일단 교육을 시킨 후, 한 달 후에 만났습니다. 하지만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듯이 기도의 나눔은 좀 산만했습니다. 우선 기도했다는 내용 안에는 너무나 많은 등장인물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자신 외에도 아들, , 남편, 친정 엄마, 가족과 이웃이 말이지요. 원래 이 기도는 하느님과 나. 딱 둘만 놓고 바라보는 것인데 말이지요.

  오늘 말씀이 그런 이야기입니다. 요나의 말에 니네베 사람들은 하느님을 믿으면서 회개를 시작했고, 복음의 예수님도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 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하십니다. 그러면 요나의 표징이란 무엇입니까? 우선 우리는 요나가, 자기 이야기나 남의 이야기를 전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들은 말씀을 전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자기가 만든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세상에서 좋다고 내놓는, 새롭고 번쩍이는 것들에 쉽사리 눈이 돌아가고 귀가 감깁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유행을 타는 것들이기에 흘러가는, 변하는 성질이 있습니다. 그런데 참 진리의 성질은 어떻습니까? 일단 무던하지요. 평범해 보입니다. 심하게 번쩍거리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이게 없으면 안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성경구절이 있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요나의 표징이란, 바로 주님 자체였습니다. 성경에 나온 남방여왕, 니네베 사람들은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그 말씀을 듣고 새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린 어떤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나요? 내가 바라는 표징은 무엇입니까? 그러면 주님이 말씀하시는 표징은 뭘까요?

  우선 관찰하는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아무 것도 섞이지 않은 현실 속의 근본을 찾고, 세상의 시각의 틀로 작용하는 이데올로기나 이즘에서 벗어나야 제대로 보는 눈이 뜨입니다. 이런 차이를 캐치하는 능력을 키우고 감지해야, 표징이 보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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