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의 예식 다음 토요일.

2015. 2. 20. 오후 10:4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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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의 예식 다음 토요일. 이사야 58,9-14; 루카 5,27-32

  안셀름 그륀과 더불어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동급 수준의 유명한 영성가가 있습니다. 그 분의 이름은 헨리 나웬 신부님입니다. 1957년에 서품을 받고 심리학과 영성 분야에 많은 책을 남기며 96년에 돌아가셨습니다. 많은 가르침을 폈습니다만, 이 분의 가슴속 숙제처럼 남아있는 문제란, 누군가가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었습니다. 편지함을 지날 때마다 내게 편지가 왔을까?를 기대하고, 안 왔으면 실망하며 밀려오는 괴로움에 휩싸인 자신을 발견하였답니다. 인정받고 싶어하는 인간의 심리,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을 때 괴로워하며 분노까지 일어났음을 그는 고백하며 그런 컴플렉스에 젖은 많은 사람들에게 해결점을 제시해주었는데요. 그 해결책이란 어디엔가 집착하지 않고, 주어진 삶을 하느님의 선물로 감사하게 응답하며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즉 영적 생활이란, 그분의 영광이 여기서 드러날 수 있게 만드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것을 실천하고자 말년에 이르러 당시 몸담고 있던 하버드 대학 영성센터를 떠나 프랑스의 장애인들을 위한 소단위 공동체인 라르쉬(L'Arhce)로 가서 봉사활동을 합니다. 라르쉬는 노아의 방주라는 뜻인데요. 책 펴내면서 개인적으로 말년을 마감할 수도 있었지만, 가난한 이들 가운데 가난하게 살아가는 삶을 실천에 옮기면서 복음적 삶을 살았는데요. 거기서 그는 이 공동체에서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드러나야 하는지를 체험하고 그들이 바로 선물임을 깨닫습니다.

  설명이 좀 길어졌습니다만, 주님이 오늘 복음에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다가가신 이유도 그것이었습니다. 복음적 태도로 살기 위해서였지요. 하지만 율법학자들은 이렇게 따집니다. 당신들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이오?” 하지만 그들의 질문을 이렇게 바꿔서 되물어볼 수 있겠지요. 왜 너는 그들과 멀리하면서 너만 특별한 척 하냐?’ 라고요. 안타깝게도 어려운 이들이 곁에 있는 지를 알면서도, 그들에게 돈은 주면서도 가까이 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사랑은 아니겠지요. 우선 우리 동네도 이와 비슷합니다. 큰 아파트 사이에 어려운 이들이 가려져 있지요. 밖에서는 안 보이니까 목동이 잘 사는 듯 보이지만, 우리는 우리의 이웃의 어려움을 잘 알아야만 합니다. 그것이 독서에서도 말씀하시는 굶주린 이들에게 네 양식을 내어주고 고생하는 이의 넋을 흡족하게 해준다면 이라는 말씀처럼, 가장 기본적인 삶을 산다면 그럴 때 참다운 용기와 자세는 생길 것입니다. 비록 남이 안 한다지만, 본래의 정신으로 돌아갈 때야만 나는 예수님처럼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여러분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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