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3주간 목요일. 예레 7,23-28; 루카 11,14-23
사도들의 후예인 신부인 제가, 사목자로 살면서 제일 안타까운 경우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그동안 교우분들이 어려운 과정을 거쳐서 세례를 받고 신앙생활을 하였는데 중간에 어떤 이유로 마음이 식거나, 교회를 떠나거나, 다른 곳에서 헤매는 상황을 바라볼 때입니다. 이런 경우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이것이 왜 발생될까?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선 교회의 입장에서는 교리를 하긴 하였지만 교우들이 원하는 바를 제대로 정확히 짚어주지 못한 면도 있습니다. ‘시간이 없다는 이유, 이 정도는 다 알겠지~’ 하면서 넘어간 경우거나, 둘째로 그동안 교회의 역사동안 발생된 문제소지를 바로잡기 위해 만들어진 여러 규정과 조치가 교우들의 생각과는 차이가 생겨 오해가 발생된 경우가 있겠구요. 세째로는 여러분의 입장에서 바라볼 때, 교회가 ‘교우들의 기분에 맞춰주지 않거나 그동안 사회에서 습득한 상식과 맞지 않는 경우’ 가 생겼을 때, 떠나는 경우가 생깁니다. 그래서 신흥종교집단에 빠지는 경우를 봅니다. 거기서는 어느 정도 만족을 시켜주니까요. 이런 경우를 바라보면서 오늘의 말씀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오늘 독서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나에게 순종하거나 귀를 기울이지 않고 오히려 목을 뻣뻣히 세우고 자기네 조상들보다 더 고약하게 굴었다.” 하느님의 길이 어떤 길인지 우린 다 알지만 그 길을 모두가 좋아라~ 하지는 않는 것이, 예전이나 지금의 현실입니다. 왜냐하면 대다수 자기 기분에 안주(安住)하거나, 자기 기분에 휩싸이는 경우, 교회 가르침을 지키는게 왠지 나만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인데요. 하지만 검증이 되지 않은 자기 기분에 도취되는 순간, 더 이상의 가르침은 불필요하게 됩니다. 그 때부터 그 가르침은 그냥 소음이 되어 버립니다. 왜냐하면 그 소리가 실천될 여지가 사라지니까요. 그래서 복음에도 마귀를 쫓아낸 주님을 보았으면서도 다른 힘이 그것을 가능케 하였다고 얘기를 합니다. 그러자 답답한 나머지 당신이 말씀하시지요. “내가 만일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를 쫓아낸다면, 너희의 아들들은 누구의 힘을 빌려 마귀를 쫓아낸다는 말이냐?..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버리는 자다.”
우리가 주님을 믿는 이유는, 내가 완전하지 않음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기’ 를 내세울 때 그 믿음은 죽어버리고 맙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하고 계신 판단의 근거라는 것이 ‘나’입니까? 아니면 ‘하느님’입니까? 그것부터 잘 봐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