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2주간 토요일.

2015. 3. 6. 오후 11:4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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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2주간 토요일. 미카 7,14-20; 루카 15,1-32

  오늘 복음 말씀은 많은 부분에서 공감을 불러일으킵니다. 처음 들을 때는 아무래도 집 나간 작은 아들에게 시선이 갑니다. 왠지 나하고 비슷해 보이기도 하고요.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도 생기고요.’ 하지만 신앙생활을 하면서 점차 큰 아들의 마음에 공감이 갑니다. 나만 열심히 하는 것 같고, 일을 하고나서도 티도 안 나고,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도 없어 보이니까 서운하지요.’ 하지만 그런 것이 지나가면 진짜 만났어야 할 대상이 보입니다. 바로 아들을 끌어안아 준 아버지의 마음이지요. 돌아온 작은 아들에게 가장 좋은 옷을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발을 신겨주어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아라 먹고 즐기자 하며 그 기쁨을 나타내고 계시고요. 시큰둥하면서 서운한 큰 아들에게는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하고 말씀하시니까요.

  점차 물질이 모든 것을 대변하는 세상에서 같은 신자들끼리도 이런 이야기를 서슴없이 합니다. 이제 자식들에게 다 주어선 안 돼. 어떻게든 마지막 남은 돈만큼은 틀어쥐고 있어야, 걔들이 내 말을 듣거든~’ 이라고요. 이런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같아 보입니다. 아버지, 재산 가운데에서 저에게 돌아올 몫을 주십시오 라고 말하니까요. 여기서 어떻게든 속지 않으려, 넘어가지 않으려 하는 모습이 지혜로운 것일까요? 잠시 상황을 정리하며 바라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워낙 요즘 민감한 사안이니까요.

 저는 여기서 아버지의 마음이 보입니다. 사실 아들이란, 비록 나이를 많이 먹었어도 아버지가 바라보기엔 부족해보입니다. 여기서 아버지의 마음은 그 아들이 스스로깨우치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지요. 죄를 못 본채 해주시는 당신 같으신 하느님이 어디 있겠습니까?” 복음에도 나오지요.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가만히 있는 것 같은  그 시간 속에서 그들은 자신의 과오 속에서 참 사랑을 만납니다. 어린 아이들이 망난이 짓에, 까불고 다니는 이유도 뒤에서 자기를 든든히 봐 주는 부모님이 있다고 느끼기에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기에 그들에게는 질책보다 당장엔 손해 보는 것처럼 여겨져도, 캐내지 않고 봐주는, 뒤끝 없는 사랑의 깊이가 필요했습니다. 어쩌면 요즘 시기의 자식이란 부모님의 돈을 타내는 방법알기에 혈안이 되어있는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아버지들이 하느님의 마음으로 대할 때, 그들도 나중에는 깨닫겠지요. 비록 지금은 모른다고 해도 나중에 자기 자식들을 통해 배울테니 , 그리 손해 보는 장사도 아닐 겁니다. 빡빡한 시기일수록 아버지의 사랑을 봐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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