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 3 주간 화요일. 다니엘3,25-43;마태오 18,21-35
예전 읽었던 시 중에 한정숙 씨의 ‘신의 은총’ 이라는 시가 생각납니다.
여명의 햇살로 왔다가 / 노을로 지면서 / 생을 마감하는 것
사함 받지 못한 잘못도/탕감 받지 못한 빚도 / 깨끗이 청산이 되는 관문
회한을 잊고/ 용서와 화해의 끈이 되어/인간의 기억 속에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사랑뿐
남은 자는/먼저 간 자의 제자가 되어/살아 볼 만한/생의 의미를 깨닫는 것
당신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가치 있는 지 우린 압니다. 그 사랑 덕분에 세상의 논리와는 다르게 진정 사람답게 사는 법이 어떤 것인지, 사랑 넘치는 삶이 어떤 것인지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과연 우린 그렇게 살고 있습니까? 오늘 복음에서 만 탈렌트 빚진 사람이 나옵니다. 그 당시 헤로데 왕의 1년 연봉이 900탈렌트였다는데요. 그렇다면 만 탈렌트는 이건 만져볼 수도 없고 갚을 수도 없는 돈입니다. 그런 그가 “제발 참아주십시오.” 라는 간절한 말에 주인은 가엾은 마음이 들어 부채도 탕감 받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큰 용서를 받은 이가 자기에게 빚진 사람에게는 감옥에까지 가두는 만행을 저지르게 마는데요.
우리도 이와 비슷하지 않습니까? 자신에게는 관용하게, 남에게는 막 대하는 모습을 말입니다. 주인이 이러지요.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 라고요. 자비?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사랑? 그거 생각보다 쉽습니다. 어떻게 하냐구요? 내가 받은 것만큼만 행하면 됩니다. 내가 배운 것만큼 실천하면 됩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자신이 용서받고 사랑받은 것은 잊어버리고 그런 상황이 닥치면 바로 계산이 들어갑니다. 1831년 조선 초대 교구장님으로 뽑히신 브뤼기에르 주교님에게 사람들은 온갖 반대의 목소리를 냅니다. ‘조선은 돈도 사람도 없고 고난뿐인 나라’ 라고요. 그러나 그들에게 이런 말을 하셨답니다. ‘결국 자기를 내주는 사랑이 없어서 나온 이야기다.’ 라고요. 안타깝게도 한국에 오시지 못하고 돌아가셨지만 그분의 말처럼 우린 받은 대로 내주어야 하는 삶입니다. 탕감해주고 용서해줘야 합니다. 아무 이유 없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삶이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