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4주간 수요일.

2015. 3. 17. 오후 11: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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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4주간 수요일. 이사야 49,8-15; 요한 5,17-30

  많은 교우분들이 긴 시간을 거쳐 어렵게 세례를 받습니다. 비록 그 시간이 6개월이지만 사실 2천년을 거쳐 온 그리스도교의 가치와 주님께서 말씀하신 복음의 깊이를 다 헤아리기에는 부족한 시간이지요. 초기 교회의 모습이 실려있는 사도전승이라는 책에 의하면 예비신자 기간만 3년이었답니다. 그런데 현재 우리 본당의 교리기간은 6개월입니다. 하지만 어떻습니까? 개월 수에 상관없이 다들 열심한가요? 사실 여기 계신 분들은, 주일도 못 지키는 분들과는 상황이 다른 분들이십니다. 온갖 풍파를 다 겪으시고 지금도 그 약속을 믿고 계시니까요. 하지만 대다수 분들의 경우를 보면서 어떻게 견뎌야 할까?’ 에 대해 살펴봐야 하는데요.

  대다수 신자들의 문제점은 교회를 대충 본다는 데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대충이란, 자신의 관점에서 교회를 바라본다.’ 는 뜻입니다. 당연히 언젠가는 부딪히게 되어있습니다. 그 시각이 진리는 아니니까요. 자신의 생각에 사로잡혀 있기에 교회를 세상의 시각으로 바라보면서 무미건조한 의무감으로 다닌다거나, 괜한 죄책감에 사로잡혀 자신을 미워하거나, 매번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만 결정을 못 내려서 오도가도 못하거나, 그래서 아예 안 다니는 게 나를 위해 낫겠다.’ 는 결정을 내리지요. 뭔가 아쉬울만한, 돌아설만한, 확실한 계기가 없다면 말이지요. 이런 분들의 경우, 교회라는 곳은 그야말로 답답한 공동체로 보일 뿐이고 사람의 일 속에서 하느님을 만나지 못하기에, 쉽게 절망하거나 얄팍한 행복에만 치중하는 경향을 보이는데요.

  오늘 말씀에서 답을 찾아보겠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지 않고서 아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분께서 하시는 것을 아들도 그대로 할 따름이다.” 사람이 하느님의 모상(模像)이라면서요? 그럼 사람이 하는 일 안에서 하느님의 신성(神性)을 만나셨습니까? 비록 겉으로는 우리가 별 다를 바 없어보였지만 그 분의 실천은 놀라운 변화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그 안으로 초대하시지요. 그러면서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 며 약속의 항구함을 보여주십니다. 그런데 우린 하느님과 닮았답니다. 그건 겉모습만의 이야기는 아니겠지요. 그럼 어떻게 닮아가야 할까요? 그러면서 어둠에 갇힌 것 같은 세상을 밝혀야 할까요? 내가 하는 일이 하느님 보시기에도 합당한가? 하는 올바름과 사랑이 나와야 하겠구요. 그 속에서 세부적으로 지혜로운 대처가 필요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우리가 보여줘야만 합니다. 빛의 모습으로 세상을 살아갈 때, 지금도 헤매는 우리의 이웃들이 그 모습을 보고 돌아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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