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4 주간 금요일. 지혜 2,1-22; 요한 7,1-30
우리 본당에 최근의 영세 받은 분만 120여 분이 됩니다. 같은 양천지구 안에서도 참으로 많은 분이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우리들에게는 감사요,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처음 보는, 예전에 아무 것도 몰랐던 이들이 주님의 자녀로 거듭난다는 점은 대단한 일이지요. 그러면서 옛날 우리들의 모습도 발견합니다. 그것은 바로 예비자들이 입교해서 교회활동을 하다가 어떤 문제에 부딛혀 결정내려야 할 경우, 평소 자신이 배우고 가져왔던 세상적인 방식을 그대로 교회로 끌고 들어와서 적용시키려는 시도를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강남 어떤 본당의 이야기입니다. 거긴 사업하는 사람도 많고,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도 많다보니 남성구역모임에서 이런 제안이 올라왔답니다. ‘우리 중에는 가르치는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도 많으니, 재테크에 대한 교육을 시켜주면 구역신자들에게 여러모로 도움이 될 것’ 이라고요. 당연히 성사되진 않았지요. 이렇듯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탈바꿈하여 살기보다는 그저 현세에서만 머물고, 그 안에서의 행복감만을 찾으려 하는데요.
오늘 독서의 말씀이 그것입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신비로운 뜻을 알지 못하며 거룩한 삶에 대한 보상을 바라지도 않고, 흠 없는 영혼들이 받을 상급을 인정하지도 않는다.” 대부분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현세에서만 만족을 찾으려 하고, 지금 좋으면 전부라고 여기니, 주님이 어디를, 얼만큼 보면서 당신의 길을 가시려 했는가?는 그들에겐 관심 밖입니다. 나하고는 크게 관계없다고 여기니까요. 그러면서 이렇게 이야기 하지요. 오늘 복음에 나옵니다. “메시아께서 오실 때에는 그 분이 어디에서 오시는 지 알지 못할 터인데, 우리는 저 사람이 어디에서 왔는 지 알고 있지 않습니까?”
살다보면 쉽사리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나는 가족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고요 하지만 사고가 터지면 이런 반응입니다. ‘너 왜 그랬니? 너 원래 그런 사람 아니잖아?’ 하고요. 허나 혼자만 몰랐던 것이지요. 우린 주님을 얼마나 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분이 어느 정도로 하느님을 사랑하며 당신의 뜻을 찾으려 했는지 아십니까? 모른다면 그분의 방식을 보아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