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5주 월요일. 다니엘 13,1-62; 요한 8,1-11
일 년여 동안 우리 본당 교우분들을 바라보면서 느낀 좋은 모습이 있습니다. 열심한 분들의 열정이 있다는 점입니다. 기도, 단체생활, 거의 매일하는 십자가의 길까지 참으로 열심하십니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조심스러움도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그렇듯 지나치면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인데요. 토마스 머튼이 쓴 ‘고독속의 명상’ 이라는 책에 이런 글이 실려 있습니다. ‘영혼의 거울을 비쳐볼 때, 눈에 보이지 않던 아버지의 모습 외에 그 어떤 영상도 나타나 있지 않을 때에야 비로소 당신의 기도는 가장 훌륭한 기도가 된다. 이 모습은 아버지의 지혜, 아버지의 말씀, 아버지의 영광이다.’ 라고요. 참된 은총을 얻기 위해선 자기가 가진 열정에 휩싸이면 곤란해진다는 말인데요.
오늘은 독서 중에서 제일 길다는 수산나 이야기입니다. 수산나를 탐낸 두 원로는 재판관이었습니다. 현실적으로 그들 자신을 막을 수 있는 건, 자기 자신 외에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이 가진 열정을 잘못 다스려 상황은 위험하게 돌아가는데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열정’을 잘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열정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다 보면, 자칫 ‘하느님을 섬기기 위한 결정’ 이었다는 핑계를 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가장 위험한 것은 ‘영적인 격정’입니다. 이 에너지가 겉보기에는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 같지만, 실상은 격정에 의해 불러 일으켜진 거짓된 열광이기에 우리를 매우 흥분되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래서 두 원로도 그 힘에 취해오다가 끝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고 말았지요. 하지만 평화의 하느님은 결코 격정에 의해 찬미 받으시는 일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간음하다 붙잡힌 여자를 붙잡아 놓고 율법학자들은 이렇게 묻습니다. “모세는 율법에서 이런 여자에게 돌을 던져 죽이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스승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세상에는 법으로 따져보면 아무 문제도 없어보이지만, 그대로만 했다가는 뭔가 부족한 것들이 있습니다. 혹시 우리의 행동 중에서도 그런 것들이 있었는가? 살펴야 하겠습니다. 괜한 열정에만 사로잡히다가, 진정한 것을 놓치고 있었는가? 를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