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5주간 금요일. 사도 15,22-31; 요한 15,12-17
여러분이 만난 최초의 친구는 누구였습니까? 워낙 어릴 적 일이라 생각이 잘 안 나십니까? 헌데 여러분 안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 친구들의 공통점은, 다른 곳에서 만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가장 가까이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바로 여러분의 부모님이었습니다. 세상은 ‘부모와 자식’으로 갈라놓고 부르긴 했지만, 실은 내 말을 들어주고, 나의 기쁨과 안타까움을 같이 나눈 친구는 바로 우리들의 부모님이었습니다. 세상은 부모와 자식을 상하관계, 효도를 해야 할 분과, 그것을 받을 관계로 바라보지만 사실은, ‘둘이 같이서 무엇을 나누었던가?’ 를 봐야 할 텐데요.
오늘 말씀이 그랬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하느님과 사람과의 관계를 이렇게 부르기 어렵지요. 우리들 같으면 괜히 권위 내세우고, 나이나 학벌 등을 따지겠지만, 그 분은 그것을 초월하여 “친구” 라 대하십니다. 그럼 친구끼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사실 이런 친구관계는, 아까 언급한 부모와 친구 맺는 차원과 비슷합니다. 이 친구 사이는 세상에서 사귄 친구 사이와는 좀 다릅니다. 그 전에는 서로의 처지나, 나이나, 생활이 비슷하기에, 서로를 막 대하고, 반말하고, 흉보고, 놀리기도 했겠지만 이 사이는 다르지요. 생각을 공유하고, 아픔을 도와주려고 애쓰고, 서로의 것을 나누는 차원의 친구입니다. 당연히 나이와 신분의 차이가 있지만, 그 차이를 알면서 시작했기에 격(格)이라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물론 서로의 위치가 다른 사람과 사귀기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불가능하지만도 않지요. 서로의 것을 잘 지켜주면서 다가간다면, 문제될 것만 발생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독서에서도 이런 편지를 씁니다. “성령과 우리는 다음의 몇 가지 필수사항 외에는 여러분에게 다른 짐을 지우지 않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가르침을 주님은 주셨습니다. 정의와 사랑이지요. 이것을 하느님이 주신 양심적 차원에서 실천해 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기에 세세한 것에 메이기보다는 ‘서로 가지고 있는 다른 상황속에서 어떻게 실현해 나갈 것인가?’ 를 봐야하는데요. 그런 친구를 잘 사귀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