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3주간 금요일. 사도 9,1-20; 요한 6,52-59
이번 한 주간 내내 평일미사의 복음 내용은 내가 주는 생명의 빵을 먹으라는, 이른바 ‘빵 주간’ 이었습니다. 한결 같이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라는 말씀에서 우린 무엇을 깨달아야 할까요? 자 여기서 우린 고린토 1서, 10장의 말씀이 떠올려집니다. “우리는 여럿일지라도 한 몸입니다. 우리 모두 한 빵을 나누기 때문입니다.” 라는 말씀입니다. ‘한 빵을 쪼개어 같이 나누어 먹는다’ 는 말을 한 단어로 표현하면 뭘까요? 바로 ‘식구(食口)’입니다. 지금이야 위생 따진답시고 개인접시로 나눠 덜어먹지만 처음부터 그렇지 않았습니다. 찌개 냄비에 자기 숟가락을 텀벙텀벙 빠뜨리며 떠먹던 우리들입니다. 그랬기에 정감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랬기에 서로의 생각을 은연중에 이해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 말씀은 이해되지 않은 상황이 벌어졌을 때 해결하는 방식입니다. 주님께서 자기들을 박해하던 사울, 바오로라는 사람을 당신의 사람으로 쓰시겠답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그에게 잡혀 죽을까봐 겁나 죽겠는데 말이지요. 일단 하나니아스는 “예, 주님” 하고 대답합니다만, “가거라” 라는 말씀은 그저 불편할 따름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내 살과 피를 받아먹으라” 는 말씀에 응당 “저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줄 수 있단 말인가?” 하는 반응은 너무나 당연해 보입니다.
여기서 당연함과 그것을 너머서는 차원의 대립과 갈등이 엿보입니다. 여기서 우린, 주님의 부활 방식과 교회라는 곳이 어떻게 위기를 겪어나갔는가?를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예수님의 부활은 ‘누군가 무덤에서 꺼내준 방식’ 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돌이 이미 굴러져 있었다” 고요. 이른바 당신이 맺고 끝내는, 결자해지(結者解之)의 방식을 쓰십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은 여러 사람이 나눠하긴 합니다만, 책임은 사목자의 몫입니다. 모든 책임은 하느님과 교회의 사목자들이 맡습니다. 분명 그 일의 과정 중에서 빚어지는 일들이 내 맘 같지않아 불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불만을 내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일단 그 일에 동참하면서 과정 속에서 만나는 새로움을 만나셔야 합니다. 나중 심판날 때 하느님은 사목자에게 이렇게 물을 것입니다. ‘너는 그 일에 관해 제대로 된 책임을 졌느냐?’ 하지만 여러분에게는 이렇게 물으시겠지요. ‘너는 그 가르침을 따랐느냐?’ 질문은 대상자에 따라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린 그 대답을 잘 해야만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