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5주간 토요일
주역에 보면 이런 글이 있습니다. “궁즉변 변즉통 통즉구(窮則變 變則通 通卽久)” 라는 말입니다. 뜻을 말씀드리자면 ‘극단에 이르게 되면 바뀌게 되고 바뀜으로 다른 곳에도 통하며, 통하면 유지된다.’ 는 말입니다. 홍수나 회오리 바람이 꼭 나쁘지만은 않지요. 가라앉았던 것을 피워오르게 떠오르게 만들면서 다시금 제자리를 잡아주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나의 감정도 극에 치닫게 될 때 예기치 않은 상황을 만나게 되면서 본래의 자리로 돌아올 수도 있는데요.
솔직히 주님의 생각은 이해하기 힘듭니다. 독서에 이렇게 나오고 있습니다. “성령께서 아시아에 말씀을 전하는 것을 막으셨으므로 예수님의 영께서 허락하지 않으셨다.” 만약 아시아에 복음이 그 당시 전파되었다면 주님을 빨리 만나게 되고 얼마나 지금보다 더 좋았을까? 싶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공부를 조금만 해보면 ‘아~ 선교가 되었어도 대단히 힘들었겠구나’ 싶습니다. 오늘 독서의 말씀은 바오로 사도의 2차 선교여행 당시였습니다. 시기는 서기 50년에서 52년이지요. 서양은 이미 왕조사회를 거듭하면서 왕권 사회의 한계를 알고 있었지만 우리나라는 막 삼국시대가 열린 때였습니다. 그나마 신라는 57년도에 건국되었으니 왕권을 세우기 바쁜 시기에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게다가 오늘 복음 말씀은 하느님의 나라의 성격을 말해줍니다. “너희가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았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 것이다.”
우린 그리스도인이 되면서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었습니다. 이 자발적인 구별됨은 어떤 때는 참 불편합니다. 말없는 남들의 기대치도 있고요. 개인적으로 불편하기에 교회를 떠나는 이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불편함속에서 이런 것을 봅니다. ‘내가 세상이 주는 안락함을 더 찾고 있었구나’ 라는 사실입니다. 세상 사람들과 잘 지내는 것이 어떤 때는 더 좋기도 합니다. 허나 어떤 부분에 닿게되면 더 이상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을 만나게도 됩니다. 즉 나쁜 것을 만나면서 ‘내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구나~’ 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나를 정신차려주게 하시는 하느님, 나를 회복시켜주시려는 그 분의 의도를 어떻게 바라 보십니까? 이 불편한 진실속에서, 우린 제자리를 찾아갈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