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9주간 토요일. 토빗 12,1-20;마르 12,38-44
천사는 어디에 있을까요? 요즘 계절 없이 찾아온 조류독감으로 인해 계란 값이 들썩이고요. 저금리 저성장의 밑바닥은 끝이 보이질 않습니다. 헌데 얼마 전 그 때는 천사를 만나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요? 봉성체를 가면 연세도 많고 병세도 갖고 계신 분들과 만납니다. 그런데 그런 분들이 저의 손도 잡아주고 얼굴도 마주 대하며 기도합니다. 누구는 마스크 끼고 사람 피하기 바쁜데, 누구는 이와 반대되는 행동을 합니다. 물론 한편으로는 두렵지요. 옮을까봐요.그러나 그렇게 할 때 참된 것도 만납니다. ‘큰 기쁨을 얻으려면, 감내하고 참아 받아야 할 것도 크다’ 는 사실을 말이지요.
오늘 독서는 토빗 이야기의 거의 마무리 부분입니다. 토빗 식구와 함께 해준 라파엘이 자신을 일곱 천사 가운데 하나라고 밝히지요. 그러면서 라파엘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진실한 기도와 의로운 자선은 부정한 재물보다 낫다. 금을 쌓아두는 것보다 자선을 베푸는 것이 낫다. 임금의 비밀은 감추는 것이 좋고 하느님의 업적은 공경하는 마음으로 드러내는 것이 좋다.”
우리가 잘하는 것 중 하나가, 남의 치부를 드러내는 일입니다. 저도 그런 짓 해보았습니다. 사방에 떠들고 다닌 적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살림살이가 쌓이는 재미가 어떤 것인지 경험한 적도 있습니다. 여러분도 해보셨겠지만 결국 남는 것이 무엇이던가요? 오히려 자신이 메말라 가는 느낌이 들지 않던가요? 처음에는 그렇게 해야만 편하고, 속시원한 줄 알았는데, 실은 그런 행동이 나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그게 좋은 줄 알았는데, 돌아오는 것은 오히려 저를 욕하는 비방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알게 됩니다. 남의 아픔을 덮어주면서, 그 사람을 배려하고 사랑하는 법을 알게 되었구요. 하느님의 업적을 드러내면서 감사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에 나온 가난한 과부의 봉헌처럼, 없는 가운데에서 남에게 드러나지 않게 뭔가를 할 수 있는 헌신의 자세가 뭔지를 알게 되어갑니다. 요즘같이 자기 살기에만 급급한 시대에 진정한 삶이 무언지 배워가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