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9주간 목요일. 토빗 6,10-17,9;마르 12,28-34
예전에 제가 맡았던 직책이 있는데요. 한 달에 한 번 지구좌 본당에서 혼인교리 강의를 하였습니다. 참가하는 예비부부들은 달마다 20~40쌍이 오는데요. 거기서 느끼는 재미있는 점 하나를 발견합니다. 분명 자기 짝보다 잘생기고 예쁜 사람들도 오는데도, 옆 다른 짝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괜히 눈길 다가 여자친구에게 죽을 염려도 있겠습니다만(ㅎㅎ).. 어쨌든 자기 짝꿍만 바라본다는 점이 참 귀엽고 재밌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7성사 중에서, 여러분이 참여한 혼인성사와 제가 약속한 신품성사와의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바로 ‘봉사’ 라는 측면이 같습니다. 저는 하느님과 교우들에게 봉사하기 위해, 개인적으로 얻을 수 있었던 제 짝을 포기하고 독신으로 살고요. 여러분은 배우자에게 봉사하기 위해, 혼인을 통해 또 다른 사람과 사귈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합니다. 실은 이 포기의 상태가 참된 약속을 만들어 준다는 점에 대하여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오늘 독서는 토빗의 아들 토비야와 라구엘의 딸 사라가 혼인을 하는 장면입니다. 월요일 부터 독서를 들으셨던 분이라면 아시지만 그들 스스로도 서로에게 다가가기 힘든 이유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토비야는 가난한 처지에 실명한 아버지를 모셔야 했고요. 사라는 이미 7번이나 결혼에실패한 여자입니다. 다 두렵지요. 불길한 전력이 있는 사라를 아내로 맞이하는 토비야나 결혼에 대해 극단적인 두려움을 갖는 사라나 말이지요. 그러나 그 두려움마저 하느님께 맡기지요. 오늘 내용에는 그들이 가지고 있던 심적으로 주저할 수 있는 장면은 나오지 않지만 끝내 서로를 받아들이면서 토비야는 사라에게 제안을 합니다. “여보 일어나구려, 우리 주님께 자비와 구원을 베풀어주십사로 간청합시다... 저와 이 여자가 자비를 얻어 함께 해로(偕老)하도록 허락해주십시오” 라며 주님께 기도합니다.
서로 아픔을 가진 이들이, 둘이 하나가 되어 서로를 의지하며 이겨나가려는 모습은 실로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서로를 위해 약속한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광경이지요. 서로를 위해 무언가를 해주려는 시도가 참다운 기적을 만나게 합니다. 그래서 복음에는 율법학자가 이렇게 경탄하지요. “과연 옳은 말씀이십니다. 마음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제물보다 낫습니다.” 우린 기적을 만나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 현장은 우리 가정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저는 여러분이 그 기적을 꼭 만나시길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