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자 윤치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2015. 5. 28. 오후 11:12:20

글자

복자 윤치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지혜 3,1-9; 루카 9,23-26

  요즘 저는 책을 잘 읽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글을 읽는데요. 글을 지은 사람들은 우리가 잘 아는 동사강목을 지은 남인 실학자인 안정복이나 북학파 지식인인 담헌 홍대용 등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옛 사람들의 글은 쓰고 싶어서 쓴 글이 아니라, 쓰지 않을 수 없어서 쓴 글이다.’ 이른바 돈이 되거나 자기 이름을 드러내려고 쓴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토로를 할 수 밖에 없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는데요. 그렇기에 이런 책을 읽으려면 본문(本文)의 의리를 추구하면서 실제 일에 적용되게끔, 정밀하고, 적실하고 진실되게 읽어야하지, 경솔하게 그 안에 자기 뜻을 넣으려고 하면 안목이 얄팍해지고 내용이 경박해질 수 있다는데요. 그래서 그런 지 오늘 기념일을 맞이하신 분들의 모습은 우리의 마음을 숙연케 만듭니다.

  작년 124위 복자들이 새로 나셨고 교황님도 다녀가셨지만, 솔직히 우리들의 삶은 별로 달라진 것이 없어 보입니다. 그럼 우리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 것일까요? 윤지충 바오로는 우리나라 최초의 순교자셨지요. 이 분의 죄명이 뭔지 아십니까? 조상의 신주를 태운 것이 이유입니다. 물론 당시는 유교시대였습니다. 헌데 교리를 배우다보니 그래도 된다고 여겨 실행에 감행합니다. 복자의 주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천주교의 십계명 중에 제4계명이 부모를 공경하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의 부모가 신주 안에 계신다면, 천주교를 믿는 사람들은 누구나 신주를 공경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신주는 나무로 만든 것이고 그것은 저와는 살이나 피나 목숨으로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그것들은 저를 낳고 기르는 수고에 아무런 몫도 하지 않았습니다. 첫째, 일반 시민이 신주를 모시지 않는다고 해서 정부를 반대하는 것이 아닌데, 왜 양반인 내가 신주를 모시지 않는다는 것이 국가 반역에 대한 죄가 되는 것인가? 둘째, 신주를 모시거나 않거나 또는 제사를 드리거나 드리지 않거나, 그것은 순전히 개인적인 종교적 신앙생활로서 국법에 어긋남이 없는데 왜 국법으로 다스리려 하는가?”를 주장합니다. 당시에는 유교가 양반들의 전유물로 여기며 종교와 국가를 분리하지 않는 정교 합일의 시대였습니다. 결국 정교가 분리되지 않았던 유교 국가 밑에 종교를 허용하면서 종교가 국가권력의 도구가 되었던 시대였는데요.

  물론 이 분은 참형을 당하셨습니다. 독서에 어리석은 자들의 눈에는 의인들이 죽은 것처럼 보이고 그들의 말로가 고난으로 여겨지지만 그들은 평화를 누리고 있다.” 복음에는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하십니다. 가만히 보면 우리 눈 앞에는 살아있지만 실은 산송장 같은 사람도 많던데요. 배운 것 잘 지켜나가고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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