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 대축일. 신명 4,32-40; 로마 8,14-17; 마태 28,16-20
나름 공부를 많이 해왔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들이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정말 학교도 많이 다녔었고, 학위도 땄었고, 학원도 다니며 자격증도 갖추었습니다. 헌데 그 배웠다는 것이 사회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은 왜 받지 못할까요? 배운 것을 토대로 배운 것을 현실로 만들어주고 있다는 그 업종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조차도 현실에서는 그걸 왜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요? 신앙도 그렇습니다. 분명 예비자 교육도 받아 세례도 받았고, 기도도 하고 미사도 참례하지만 늘 그렇듯, 왜 나는 기도하면서 느낀 평안한 삶을, 밖에서는 느끼지 못하고, 신앙의 좋은 기억을 나의 삶에서 연결시키지 못하는 것일까요? 사실 이 문제는 저를 비롯한 모든 이의 고민입니다. 이 고민에서 해방될 수는 없을까요? 그저 사회 탓만 해야할까요? 그것을 하지 않는 사람들을 탓해야 할까요?
오늘 말씀에서 그것을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독서는 “너희는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그 분의 규정과 계명들을 지켜라” 하시고요. 복음에서는 “내가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하십니다. 이쯤 되면, 구약의 하느님과 신약의 예수님이 하나로 연결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이런 의문이 듭니다. ‘분명 나는 교회를 통해 많은 것을 듣고 배웠다. 하지만 내 생활은 왜 변화가 없을까?’ 하는 의문입니다. 여기서 먼저 점검할 사항이 있습니다. ‘주님이 가르쳐주신 것들을 내가 어떻게 받아들였는가?’ 하는 점입니다. 남성 같은 경우, 예비군 훈련을 가면 여러 가지 사항에 대해 많은 것을 가르쳐줍니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의 반응은 이렇지요. ‘시간아 가라~’ 요새는 열심하면 빨리 집에 보내주기도 하지만 그것은 훈련을 성실히 받으려 함이 아닌, 그저 집에 가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행동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이 가르쳐주신 것을 나는 귀담아 듣지 않았던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나의 선입견으로 안될 것 같다고 여기고, 별로 해보지도 않았습니다. 즉 나의 섣부른 생각으로 그 분이 오실 수 있는 통로를 막아버렸던 것입니다. 당연히 그 가르침은 죽은 지식이 되어버렸지요. 둘째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잘 몰랐습니다. 세상에는 나를 도와줄 도구들이 많습니다. 성격유형 검사건, 위기에 처했을 때 해왔던 나의 평소 방식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이것을 유의깊게 보지 않습니다. 그래서 매 번 같은 패턴으로 잘못을 저지릅니다. 고해성사 때 하는 죄의 유형이 그런 경우입니다. 매 번 비슷한 잘못을 저지릅니다. 그러면서 또 똑같이 반복합니다. 이처럼 나는 나를 제대로 보지 않았습니다. 셋째로, 계속되는 꾸준함이 부족했다는 사실입니다. 저도 10년 가까이 신학공부를 하고, 10년 가량 현실에서 신학공부를 하다보니 알게 되었습니다. 공부는 졸업해서도 계속해야한다는 점입니다. 내가 배운 신학이란 그저 기본기였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이제는 세상에서 부딪혀 보면서 기본기를 바탕으로 그동안 배운 것이 죽은 지식이 되지 않기 위해, 나의 현실과 접목을 시켜가야 함을 알게 됐습니다. 이것은 몇 번 한다고 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꾸준해야만 합니다. 얼마 전 청년 어떤 단체에서 질문을 하고 싶다고 교리적인 차원을 들고 왔었습니다. 하지만 그 질문이란 예비자들이나 물을 수 있는 단계였습니다. 세례 받은 지도 꽤 되었는데, 이미 성인인데도 그 단계가 ‘첫영성체 어린이 수준’ 라는 점에 대해 조금 충격이었는데요. 그러기에 관심을 갖고 꾸준해야 합니다. 넷째로, 도덕적으로 강직할수록 더 많은 성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자신을 조절하고 제어하는 능력입니다. 현명한 사람은 첫째 단계를 단단하게 만들기 전에는 둘째 단계로 넘어가지 않는답니다. 즉 자기 토대가 단단하지도 않은 데, 너무 많은 자재를 올리게 되면 무너지고 말지요. 도덕적으로 강직해지려면 나 자신을 과대평가 하거나 너무 많은 것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조절이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그런 조절능력이 키워진다면 모든 것에서 유심히 관찰하면서 시의 적절한 판단을 내려 실천하십시오. 이 판단능력은 누가 가르쳐 줄 수 있는 성질이 아닙니다. 마치 숨을 호흡하듯이 해야 합니다. 얼마나 마셔야 할지, 얼마나 내뱉어야 할 지는 자신이 호흡하면서 느껴야 하듯이 말입니다. 그럴 때 그 판단이 실수였는지 괜찮았는지 몸으로 알게 될 것입니다.
오늘 대축일을 맞이하는 삼위일체의 성격은 그렇습니다. 나 스스로도 나 자신을 잘 몰랐는데 그 분을 어찌 다 알겠습니까?허나 당신이 가르쳐주신 방식을 행해보십시오. 그럴 때 2독서처럼 “하느님의 영의 인도를 받는 우리가. 그 분의 자녀이며 상속자” 라는 사실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