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1 주간 수요일.

2015. 6. 16. 오후 7:2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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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11 주간 수요일. 고린29,6-11;마태 6,1-16.18

  17-8세기에 프랑스에서는 얀세니즘이라는 사조가 신앙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었습니다. 인간이란 너무나도 미약한 존재이기에 구원을 얻기 위해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으며, 오직 하느님의 은총만이 그것을 가능케 해준다는 사상이었습니다. 물론 우리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만큼 약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약한 인간이라고 하여 자신의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없기에 그냥 물러서 버리는 것은 하느님께서 주신 능력을 소홀히 여기고 저버리는 행동일텐데요.

  오늘 1독서에서는.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모든 은총을 넘치게 주실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언제나 모든 면에서 모든 것을 넉넉히 가져 온갖 선행을 넘치도록 할 수 있게 됩니다.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그가 가난한 이들에게 아낌없이 내주니 그의 의로움이 영원히 존속하리라.” 제가 20대 초반에는 누가 먹을 것을 사준다고 하면 참 좋아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제가 먹을 때보다 후배들의 입에 먹을 것이 들어가는 것이 더 기분 좋아지는 것은 단순히 나이가 들었기 때문이라기보다 하느님께서 베풀어주신 마음을 갖게 해주시고 여기에 동참하며 응했기에 가능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언가 자선을 행하고 베푸는 행위는 하느님의 은총이지만 그것에 대해 단식을 할 때에는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라.” 라는 말씀처럼 드러내지 않고 기쁘게 임할 때, 우리 자신이 성화(聖化)됨을 깨닫습니다. 미래는 하느님의 영역입니다. 하지만 그 영역 안에는 우리 자신의 노력과 수고도 포함됩니다. 많은 분들이 봉사를 하면서 이웃을 도와주면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이웃의 얼굴을 보니 저도 기분이 좋네요.이 이야기는 그저 듣기 좋으라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2007527일자 워싱턴 포스트지는 이런 기사를 내놨습니다. 미국 국립보건원의 신경 학자들이 두 가지 상황을 설정하였는데, 하나는 상당량의 돈을 기부하는 상황과 또 하나는 자신의 수중에 돈을 넣어두는 두 상황을 가지고 뇌를 찍어보는 실험을 하였더니, 기부를 결심하는 순간, 음식을 먹거나 할 때처럼 쾌감에 반응하는 뇌부위가 활성화 되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기부 액수를 더 늘릴수록 뇌의 전두엽 피질이 활성화 되었다고 하니, 이 발견으로 자신의 이득보다 타인의 이득을 앞세우는 이타심은, 타고난 이기적인 충동을 억누를 때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인데요. 이처럼 우리도 도움을 줄 수 있음에 기뻐합니다. 그 힘을 주님으로부터 받아 행할 때, 분명 하느님의 나라는 우리들의 것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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