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1 주간 수요일. 고린2서 9,6-11;마태 6,1-16.18
17-8세기에 프랑스에서는 얀세니즘이라는 사조가 신앙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었습니다. 인간이란 너무나도 미약한 존재이기에 구원을 얻기 위해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으며, 오직 하느님의 은총만이 그것을 가능케 해준다는 사상이었습니다. 물론 우리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만큼 약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약한 인간이라고 하여 자신의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없기에 그냥 물러서 버리는 것은 하느님께서 주신 능력을 소홀히 여기고 저버리는 행동일텐데요.
오늘 1독서에서는.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모든 은총을 넘치게 주실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언제나 모든 면에서 모든 것을 넉넉히 가져 온갖 선행을 넘치도록 할 수 있게 됩니다.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그가 가난한 이들에게 아낌없이 내주니 그의 의로움이 영원히 존속하리라.” 제가 20대 초반에는 누가 먹을 것을 사준다고 하면 참 좋아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제가 먹을 때보다 후배들의 입에 먹을 것이 들어가는 것이 더 기분 좋아지는 것은 단순히 나이가 들었기 때문이라기보다 하느님께서 베풀어주신 마음을 갖게 해주시고 여기에 동참하며 응했기에 가능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언가 자선을 행하고 베푸는 행위는 하느님의 은총이지만 그것에 대해 “단식을 할 때에는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라.” 라는 말씀처럼 드러내지 않고 기쁘게 임할 때, 우리 자신이 성화(聖化)됨을 깨닫습니다. 미래는 하느님의 영역입니다. 하지만 그 영역 안에는 우리 자신의 노력과 수고도 포함됩니다. 많은 분들이 봉사를 하면서 이웃을 도와주면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이웃의 얼굴을 보니 저도 기분이 좋네요.” 이 이야기는 그저 듣기 좋으라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2007년 5월 27일자 워싱턴 포스트지는 이런 기사를 내놨습니다. 미국 국립보건원의 신경 학자들이 두 가지 상황을 설정하였는데, 하나는 상당량의 돈을 기부하는 상황과 또 하나는 자신의 수중에 돈을 넣어두는 두 상황을 가지고 뇌를 찍어보는 실험을 하였더니, 기부를 결심하는 순간, 음식을 먹거나 할 때처럼 쾌감에 반응하는 뇌부위가 활성화 되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기부 액수를 더 늘릴수록 뇌의 전두엽 피질이 활성화 되었다고 하니, 이 발견으로 자신의 이득보다 타인의 이득을 앞세우는 이타심은, 타고난 이기적인 충동을 억누를 때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인데요. 이처럼 우리도 도움을 줄 수 있음에 기뻐합니다. 그 힘을 주님으로부터 받아 행할 때, 분명 하느님의 나라는 우리들의 것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