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요한 세례자 탄생 기념일
우리 모두 어린 시절이 있었습니다. 다들 나름의 꿈과 희망이 있었구요. 집안의 기대도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벌써 시간이 이만큼 흘렀습니다. 바랬던 꿈을 이뤘다고 해서, 내가 예상했던 행복으로 꼭 이어지는 것만도 아님을 알게 되었구요. 반대로 꿈을 이루지 못했다고 해서, 꼭 불행한 인생이었다고 단정지을 수만도 없음을 알게 됩니다. 오히려 내가 만나지 못했던 영역을 보게 해 주신 뭔지는 다 모를 그분의 섭리를 헤아려 보게 되는데요.
오늘은 그 유명한 세례자 요한의 탄생 기념일입니다. ‘세례자 요한’ 하니까, 되게 대단한 사람처럼 보입니다만, 실상 이 분의 모습은 복음서에서도 많이 나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이 나타나시자 자신의 자리를 비켜드려야 하는 캐릭터입니다. 마치 ‘기우는 달’ 같다고나 할까요? 늦게 아들을 임신한 엘리사벳의 사연이나, 갑자기 말을 못하다가 혀가 풀려 낫게 된 아버지 즈카리야의 이야기에서 당시 실시간 검색어 1등에 오르며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 했지만, 그들의 기대와 다르게 요한은 많은 시간을 광야에서 은둔자처럼 지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출현시기와 더불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집니다. 그를 따랐던 제자들도 이제는 예수님께로 가버리고 있습니다. 누구도 잊혀지고 싶지 않겠지만, 오히려 그는 잊혀진 인물이 되길 원합니다. 2독서에는 “나는 그 분이 아니다. 그 분께서는 내 뒤에 오시는 데, 나는 그 분의 신발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며 자기 자신을 묻어버리지요. 1독서에도 이런 말씀이 나오지요. “나는 쓸데없이 고생만 하였다. 허무하고 허망한 것에 내 힘을 다 써버렸다.” 보통 사람들은 이런 푸념만 하고 원망할 것입니다. 하지만 뒤이어 이런 말이 나오지요. “그러나 내 권리는 나의 주님께 있고 내 보상은 나의 하느님께 있다.”
우리의 이 신앙은 많은 순교자들 덕택으로 이뤄졌습니다. 성인, 복자품에도 못 오른 이름 모를 무명의 순교자들이 우리를 키워냈습니다. 그 분들의 죽음을 누구도 헛되다고 얘기 못 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구약의 4천년간 구세주만 기다리다가 끝내 주님을 보지 못한 많은 이들의 인생 또한 헛되다고 말할 수 없겠지요. 우리 삶에는 미처 열매를 보지 못하고 삶을 마친, 지나간 수 많은 영혼들이 있어왔습니다. 어쩌면 우리도 이렇게 살아야만 합니다. 내가 있을 때는 열매를 맛보지 못하지만, 후대를 위해 해야 할 무언가를 해야만 합니다. 비록 몇 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의 사목생활을 하면서 저는 마음을 이해합니다. ‘내가 이룰 수 있는 것은 별로 없구나’ 라는 사실을요. 하지만 당신은 계속 일하시는데요. 그러면 여러분은 어떤 마음을 품고 사시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