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3주간 화요일. 창세 19,15-29; 마태 8,23-27
여러분께서는 기도를 많이 하실텐데요. 그럼 살면서 가장 애절한 기도를 드렸던 때는 언제였고 어떻게 하셨습니까? 먼저 제 얘기를 좀 꺼내겠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무렵 어떤 사진을 보게 되었습니다. 눈이 녹고 있던 어떤 땅이었는데요. 눈이 녹아내리는 현장이기에 아직 어느 곳은 눈이 쌓여있고요. 어떤 곳은 까만 흙이 드러난 곳이었습니다. 헌데 그 안에 예수님 얼굴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마 여러분도 보신 기억이 있으실 것입니다.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인 제가 할 수 있는 게 있나요? 무작정 보게 해 달라고 기도를 했지요. 기도를 하고 저는 사진만 뚫어지게 보고 있었습니다. 20분 정도 지났나요? 그런데 갑자기 뜨거운 것을 갑자기 들이켰던 것처럼 몸이 화끈거리면서 저도 모르게 ‘보인다’ 를 외쳤고요. 제 옆에서 같이 기도하던 어머니도 제 소리에 놀라 눈을 뜨면서 사진을 보게 되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건 개인적인 체험이라 믿지 않으실 수도 있지만 모자(母子)가 서로를 끌어안고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다 26살 신학교를 지망했을 무렵, 제가 다시 대입을 준비해야 했을 때, 할 수 있는 게 있었겠습니까? 학원가서 공부하고, 학원가는 버스 안에서 당시엔 묵주기도가 20단이 아닌, 15단을 하며 열심히 바쳤습니다. 그러면서 신부님들이 시편으로 기도한다는 말은 어디서 들어가지고, 시편 150편을 매일 기도했었습니다. 나중에 알았지요. 그런 기도가 ‘성무일도’ 였다는 것을요. 그리고 사제품을 받기 전, 성인 호칭기도 때 하는 기도는 꼭 들어주신다는 소리는 또 어디서 들어가지고, ‘뭘 기도할까?’ 하다가 성인의 이름이 나올 무렵 무작정 ‘사제다운 사제 되게 해주소서’ 만 계속 되풀이 하였습니다. 솔직히 신부가 뭐하는 사람인 지, 살아보지도 않았는데 ‘사제다움’을 운운하는 자체도 어떻게 보면 안 맞는 이야기 같지만, 어쨌든 말씀드린 4가지 일화는 제 삶에서 참으로 애절하게 기도했던 추억입니다.
오늘 말씀이 그런 애절함이 나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으로 치닫자 천사가 “달아나 목숨을 구하시오. 이 들판 어디라도 멈추어 서지 마시오” 라고 말하지만 너무 먼 길이기에 “보십시오 저 성읍은 가까워 달아날 만 하고 자그마한 곳입니다. 제발 그리로 달아나게 해 주십시오” 라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좋소. 내가 이번에도 그대의 얼굴을 보아 서둘러 그 곳으로 달아나시오” 라고 들어줍니다. 제자들도 풍랑을 만나자 “주님 구해주십시오. 저희가 죽게 되었습니다.” 라고 하자 “왜 겁을 내느냐?” 라고 꾸짖긴 하셨지만 결국 그들의 원을 들어주십니다. 기도를 정말 잘 하시고 싶으시다면 하느님이 감동하실 만한 기도를 해야겠습니다. 그럴 때 들어주시는 당신의 사랑이 얼마나 감사한 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