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3주간 토요일

2015. 7. 3. 오후 11: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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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13주간 토요일. 창세 27,1-29; 마태 9,14-17

  궁금하고 알고 싶지만 참으로 모를 것이 하느님 뜻입니다. 그토록 하느님의 뜻을 알기를 원하지만 당신께서 펴시는 방법은, 어떤 때는 이해수준을 넘어서는 차원을 만나는데요. 이럴 때 우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 독서를 보자면 아버지 이사악이, 아들 야곱에게 복을 빌어주는 장면입니다. 보통 축복을 받는 대상자는 원래 장남이어야 합니다. 헌데 오늘은 다릅니다. 야곱은 형 에사우의 동생입니다. 게다가 이런 부분은 이 형제들에게만 해당되지 않습니다. 이집트에 가서 이스라엘 백성이 새 삶을 살게 해 준 요셉은 야곱의 아들 중 무시받던 막내였구요. 하느님은 카인보다는 동생 아벨의 제물을 더 잘 받으셨습니다. 다윗왕도 양이나 치던 집안의 막내였습니다. 솔로몬도 자기보다 먼저 태어났던 죽은 형이 있었습니다. , 이것만 보더라도 하느님의 선택은 보통 우리들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장유유서를 벗어나는 듯 보입니다. 그런데다 복음도 비슷한 상황입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며 예전 가졌던 풍습을 벗어나는 듯한 발언을 하십니다. 이런 사안을 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느껴야 할까요?

  한 사람이 구원을 받는 데에는 어떤 것도 제한을 두고,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사실 구원받은 구약의 인물들 대다수가 사회에서는 비주류였습니다. 예수님도 비슷하게 출신성분도 잘 모르겠는 유랑설교가셨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자기 출신이 별로이면 괜히 주눅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분들은 선택을 받기 전까지 자기 할 일을 쭉 해왔습니다. 다윗도 왕으로 기름받기 순간까지도 여느 보통 때처럼 양을 치고 있었구요 주님도 언제나 그러셨듯이, 당신 할 일을 하고 계셨습니다. 다만 당신은 현재 살고 계신 시대를 주의깊게 보시며 구원의 때를 준비하고 기다리셨습니다. 이는 우리들도 뭔가를 준비하면서 살고 있다면 아예다른 상황이라고만도 치부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물론 주님의 뜻이 어떤 계획성을 갖고 계시고 있는 지, 자세하게 알 수 없어 답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평범함 속에서도 주님의 구원이 나를 통해 어떻게 이뤄지는가? 를 경험하려면 평상시 삶을 잘 돌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도 그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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