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5주간 목요일. 탈출 3,13-20; 마태 11,28-30
예전 가요 중에 이런 노래가 있었습니다. ‘당신은 누구시길래, 이렇게 내 마음 깊은 거기에 찾아와, 어느 새 촛불 하나 이렇게, 밝혀놓으셨나요?’..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나머지는 노래방에서 들으실 수 있겠습니다. 송창식의 ‘사랑이야’ 라는 노래지요. 남들이 보기에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닌데도, 이상하게도 그 사람은 내 마음을 움직입니다. 그렇게 예쁜 얼굴이 아닌데도, 그저 떼 쓰는 하나의 작은 아이일 뿐인데도.. 그런 이들이 내 마음을 흔들어댑니다. 왜 그럴까요?
오늘 모세는 주님과 만납니다. 하지만 그 광경이 편치만은 않아보입니다. 당신이 누구신지도 모르겠고, 왜 당신이 이렇게 하시는 지도 모르겠고, 남들에게 설명은 해줘야 하겠는데, 이유를 도통 모르겠으니까요... 그런 자리에서 당신은 앞으로의 계획을 얘기하십니다. “너희 조상들이 하느님인 내가 이집트에서 겪고있는 일을 살펴보았다” 하시면서 그동안의 과정을 쭉 보고 계셨답니다. 그러면서 구원의 땅으로 해방시키시겠답니다. 그리고 이런 말씀을 덧붙이십니다. “이집트 임금은 너희를 내보내지 않으리라는 것을 나는 안다. 그러므로 나는 손을 내뻗어 이집트에서 온갖 이적을 일으켜 그 나라를 치겠다.” 고요. 해방의 시간은 오겠지만 과정은 순탄하지 않을 것임을 미리 알려주십니다. 그리고 그 후의 상황은 우리도 압니다. 열 가지 재앙을 같이 겪으면서 벌어지는 일들입니다. 그런데 그 재앙을 이집트 사람만 겪은 것은 아니지요. 약속을 받은 이들도 함께 겪습니다. 하지만 결국 승리를 얻은 이들은, 약속을 이행하는 분을 믿은 이들의 몫이 되었지요. 그래서 복음에도 말씀하십니다. “내 멍에를 매고 나에게 배워라” 그 멍에란 교회용어로 말하자면 십자가요, 요즘 말로 바꿔 부르자면 ‘부담’입니다. 그러나 그 부담이 부담으로 끝날 것이 아님을 알기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요?
사실 누군가와 사귀고 함께 산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같은 공간에 다른 사람이 들어와 있다는 자체가 일단은 멍에요, 부담이지요. 하지만 그렇게 함께 할 때 사랑이 뭔지도 알게 됩니다. 우리는 결국 사랑을 잘 하려고 여기 모였습니다. 그리고 화답송에 나온 것처럼 ‘주님의 당신의 계약, 영원히 기억하셨네’ 라는 말씀처럼 그분은 약속을 지키는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약속, 그 사랑을 어떻게 현실화 시키고 계십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