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6주일. 예레 23,1-6; 에페 2,13-18; 마르 6,30-34
지금처럼 여름이었던 예전 신학교 2학년 때가 생각납니다. 그 당시 2학년 여름방학 프로그램은 농활체험이었습니다. 이미 48년 전부터 천주교 내에서는 ‘가톨릭 농민회’가 있어왔습니다. 그 가톨릭 농민회에 소속된 농촌 지방에 가서, 도움의 손길을 펼치면서 배우는 시간을 갖는 것이 방학프로그램의 취지였습니다. 사실 서울 사람이 농촌에 대해 얼마나 알겠습니까? 고작 하는 것이라고는 잡초제거, 논에 피 뽑기, 무너진 둑 정비하기 정도이지요. 밥도 우리끼리 알아서 해 먹어야 하기에, 조를 나누어서 논에서 일하는 팀과, 식사 준비를 하고 끼니 전 후에 참을 만들어 대주는 팀으로 나뉘었습니다. 원래는 아침 기상 알람을 맞춰놓았지만 며칠 되면서 알람이 필요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식사준비를 하는 팀에서 아침마다 마늘을 찧는 소리가 알람보다 빨랐기에 귀가 따가와서 일어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가 본 농촌현장은 친환경을 하는 곳이었습니다. 오리와 우렁이를 논에 풀어 놓고 그들이 불필요한 해충을 잡아주고 풀을 뜯는 현장을 보면서 ‘참 편하게 할 수도 있는 일을 일부러 이렇게 하는구나~’ 하는 모습에서 고마움과 미안함이 들었습니다. 고마움이란, 농약을 치지 않으면서 하려는 그들의 애씀이고요. 미안함이란, 이를 모르면서 목구멍에 밥 넘어가는 것을 당연스레 여겼던 저의 자세였습니다.
오늘은 농민주일입니다. 벼의 피를 뽑으면서 이런 것을 느꼈습니다. ‘허리를 굽혀야만 일을 제대로 하는 것이며, 이렇게 힘들게 해야 먹는 밥이 얼마나 달고 고마운 것인가?’ 를 알게 된다는 점입니다. 사실 우리들 모두 도시사람들입니다. 게다가 목동이라는 계획도시에 살고 있습니다. 주거지와 도로망, 종교시설이 잘 정비된 곳에서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잊고 있었습니다. 농촌은 도시의 도움 없이도 살 수 있지만, 도시는 농촌의 도움 없이는 1주일도 못 버틴다는 사실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마트에 가서 채소나 먹을꺼리를 사오지만, 그것을 재배하고 길러서 키워준 사람이 없다면 우린 이 삶을 지속시킬 수 없으니까요. 우리도 먹고 살기 힘들다고 말하지만 사실 뒤에서 우리를 서포터 해주는 그들의 평균 연봉이 고작 천만 원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럼 기업식 농업이 해답이 될 수 있을까요? 하지만 기업농으로 얻는 것이라고는 농약, 화학비료, 제초제 오염, 유전자 조작 농산물의 위험뿐만이 아니라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농사를 짓지 않고 모든 식량을 수입하여 쓰겠다는 식량주권까지도 포기하는 문제에 봉착합니다. 그래서 작년 농림축산식품부조차도 ‘가족농업주의는 무너져서는 절대 안 되는 우리 농업의 중요한 축’ 이라고 말할 정도입니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첨단을 달리고 있는 이 때에 가족농업주의의 가치를 말한다는 것이 참으로 모순 같지만 실제는 그렇습니다. 놀랍게도 미래는 거기에 있다는 점입니다.
오늘 독서와 말씀은 하나같이 사람을 살리려는 주님의 모습이 담겨있습니다. 1독서에는 양 떼를 파멸시키고 흩어버린 목자들을 꾸짖으시며 “내가 그들을 돌보아 줄 목자들을 그들에게 세워주리니, 그들은 더 이상 두려워하거나 당황하지 않고 그들 가운데 잃어버리는 양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보라 그 날이 온다.” 하고 말씀하고 계시구요. 복음에서는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 하시면서 애달픈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2독서에는 “그분께서는 당신의 몸으로 유다인과 이민족을 하나로 만드시고 이 둘을 가르는 장벽인 적개심을 허무셨습니다.” 하시면서 서로 공생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우리에게 어떤 이념보다는 우선 살 수 있는 바탕을 세워주는 사랑스런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목동 본당 교우 여러분
농부는 땅을 믿고 삽니다. 하늘을 보고 살아야 합니다. 사실 안 보이고 불확실한 것을 믿을 수 밖에 없습니다. 사실 우리도 그렇습니다. 불확실한 미래를 살아가려면 땅에 발을 딛고 있으면서, 곁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며 그 사랑의 기운을 서로에게 나눠줄 때 농부와 같은 마음이 바로 하느님의 마음임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런 삶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