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대축일
예전에 실제로 있었던 어떤 일입니다. 사귄 지 몇 년 된 남녀가 데이트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남자가 우연히 길에서 친분이 있던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오랜만에 만난 탓인지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던 중, 여자를 가리키며 ‘저 여자분은 누구야?’ 라고 물으니 남자는 이렇게 답했답니다. ‘어~ 아는 사람’ 그 사람과 헤어진 뒤 여자는 심술난 표정으로 묻습니다. ‘왜 아는 사람이라고 얘기했어? 내가 창피해?’ 하지만 남자는 답을 못했다는데요. 남자의 속사정은 알 수 없지만, 혹시라도 여자가 생각하는 그 정도의 사랑이 없어서는 아니었을까요?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참 찔리는 말씀을 만납니다.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사람의 아들도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에 싸여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 믿는 신앙인이라고 하지만, 가끔 신자라는 것을 드러내질 못하는 이들을 만납니다. 왜 그럴까요? 다 나름 이유를 말씀합니다만, 우리가 주님의 자녀임을 나 스스로가 잘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요? 오늘 대축일을 맞이하면서 잠시 옛날 시절로 돌아가겠습니다. 우리나라는 천주교 신앙 역사를 가진 지 230년 정도 흘렀습니다. 분명 230년 전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지금처럼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발각되면 죽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숨어 다니면서, 드러내지 못하면서, 믿음의 시간을 지내고 버텨왔습니다. 그 분들의 노력과 수고로 성인들도 많이 났고, 작년에는 복자도 탄생하셨습니다. 그렇게 그 분들은 당신들이 살던 역사 안에서 무언가를 이루셨고 그것을 우리에게 남겨주셨습니다. 하지만 우린 어떻습니까? 무엇을 나눠주고 알려주고 있습니까?
저번 주 예비자 입교식이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세례를 통해 신앙의 첫 발걸음 떼신 지 이만큼 흘렀습니다. 예비자가 매 번 들어오고, 여러분께서 교회에 나오시고 기도를 하는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내가 달라지기 위해서입니다. 무엇으로부터 달라지냐고요? 예전의 나에서 달라지기 위해서입니다. 예전의 나에서 머물고 싶지 않으려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식 때 신앙의 서약을 하잖습니까? 달라지지 않으려면 서약을 왜 하겠습니까? 3번에 걸쳐서 ‘믿습니다. 끊습니다’ 를 반복하지요. 그럼 무엇을 믿으려 합니까? 주님을 믿고, 사랑을 믿고, 구원을 믿겠다는 것이지요. 그럼 무엇을 끊습니까? 주님을 거부하려는 마음을 끊고, 사랑을 막아서는 방해물을 끊고, 나 자신에 갇혀있는 것을 끊겠다는 것 아닙니까? 하지만 모두들 그런 서약을 다 하였지만 실제 생활에 부딪히다보면 나를 숨기고, 사랑을 숨기고, 주님을 세상에 드러내질 않습니다. 왜 그래야 할까요? 예전 신앙의 선조들도 분명 역사의 현장에서 살았던 이들입니다. 그들도 나름의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현실의 한계 속에서도 거기서 해결점을 찾으려 몸부림을 쳤고, 그 방법을 주님의 방식에서 찾았습니다. 하지만 요즘 우리들 대다수는 그 방법을 내 안에서만 찾으려고 듭니다. 많이 배웠다고 여기기 때문일까요? 당연히 내 안에서만 찾다보면 해결이 안되는 것을 만납니다. 왜냐하면 일단 나 스스로가 완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불완전하다는 나에게서 계속 찾고 있으니 답이 안 나오지요. 그러기에 고민에 휩싸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알게 되지요. 정작 만나야 할 분을 제일 먼저 찾았던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제일 나중에서야 찾고 후회하였다는 사실입니다.
1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왔습니다. “주님을 신뢰하는 이들은 진리를 깨닫고 그분을 믿는 이들은 그 분과 사랑 속에 살 것이다.” 당신을 믿는 마음에서 참된 것에 다가갈 수 있는 첫 시작이 열립니다. 그 어떤 어려움도 그 마음을 방해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 어려움이 우리를 더 이겨나가게 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신앙이란 그런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나는 주님의 사랑을 알고 있고, 그 사랑의 효과를 맛보았고, 구원의 약속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2독서 마지막을 이렇게 장식합니다.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 사랑은 강력합니다. 서로를 묶어주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 사랑이 주는 힘을 다시 만나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내가 그동안 어떤 사랑을 했었는 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