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8주간 화요일. 로마 1,16-25; 루카 11,37-41
논어라는 책에 옹야편에 보면 이런 글이 있습니다.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보다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 하느님,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뭔지 모를 분은 여기 계시지 않습니다. 하지만 삶이 즐겁지 못한 이유는, 아는 것이 곧 즐기는 차원까지 다다르지 못한 것은 아닐까 바라보게 됩니다. 어릴 때를 잠시 들여다봅니다. 모두들 공부를 잘하고 싶다고 말합니다만, 저도 그 당시에는 공부를 왜 해야하는 지도 몰랐고, 공부가 재미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그 때를 회상해보니, 공부를 즐길 정도로 재밌어 하지도 않았고, 잘하지도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즐겁지 않으니 흥미가 없었구요. 흥미가 없으니, 잘하고 싶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앙생활과 나의 인생이 즐거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단순히 계명 지키고, 주님이 말씀하신 그 정도 수준에서만 머물면 안되겠습니다. 그 차원을 뛰어넘을 때, 나는 즐거울 수가 있는데요.
오늘 말씀이 그러합니다. 1독서에는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느님의 힘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체험한 주님의 말씀이 얼마나 대단한 지를 설명합니다. 하지만 체험을 하지 못한 이들은 그 말씀을 들었어도 별로 달라지지 않습니다. 독서 중간 이하에 나옵니다. “하느님을 알면서도.. 그분께 감사를 드리기는 커녕 마음이 어두워졌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지혜롭다고 자처하였지만 바보가 되었습니다.”
얼마 전 본당 교리봉사회와 회의를 하던 도중 어떤 분이 이렇게 질문을 해왔습니다. “지금 세례 후에 4개 정도의 과정을 우리 평신도가 하고 있는데, 다른 것은 몰라도 ‘영원한 생명’ 부분은 성직자, 수도자가 해야 하지 않을까요? 저희는 잘 모르니까요” 그날 회의 전에 읽었던 복음은, 재미있게도 요한복음 3장에 나오는 내용이었습니다. 말씀은 이랬습니다.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저는 몇 십년간 본당 사람들에게 추앙을 받으며 단체장을 역임도 하셨다는 분이, 영원한 생명에 대한 확신없이 어떻게 계속 남을 가르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습니다. 확신없이 남 앞에 선다는 것처럼 위험한 일은 없으니까요. 복음에 나오는 바리사이의 이율배반적인 자세도, 즐기지 못하는 신앙을 말해줍니다. 1독서 밑에 나오는 “하느님께서 그들이 마음의 욕망으로 더럽혀지도록 내버려 둔다”는 표현은 이렇습니다. 붙잡고, 타이르고, 다그치고 하는 것은, 어릴 때에나 통하는 방법입니다. 하지만 우린 성인입니다. 그렇기에 하느님은 우리의 선택마저도 자유롭게 인정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러기에 이미 배운 것이, 삶으로 이어지려면, 단순히 지키는 차원을 넘어서야만 합니다. 그러시길 부탁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