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 이사 2,1-5; 로마 10,9-18;마태 28,16-20
여기 한 가지 실험결과를 말씀드려봅니다. 그 실험은 ‘자신이 접하는 정보를 얼마나 선별하여 자기 방식대로 받아들이는가?’ 에 대한 실험입니다. 실험참가자들을 두 집단으로 나누면서 영상을 보여줍니다. 생일을 맞이한 어떤 여자가 남편과 저녁식사를 하는 장면입니다. 이때 사회자는 한 집단에게는, 그녀의 직업이 ‘도서관 사서’ 라고 알려줍니다. 그리고 다른 집단에게는, 그녀의 직업이 ‘식당 종업원’ 이라고 알려줍니다. 이 때 도서관 사서라고 알고서 영상을 보던 실험참가자들은, 그녀가 안경을 끼고 있었고,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왔다는 사실을 더 잘 기억한 반면, 식당 종업원이라고 들었던 참가자들은, 그녀가 맥주를 마셨었고, 집에 TV가 있었다는 사실을 더 잘 기억해내었답니다. 즉 나와 관련된 정보가 내 마음에 들지 않을 때에는, 같은 것을 보더라도 얼마든지 건망증을 발휘합니다. 그래서 과거에 내가 기부한 금액이 있었다면 실제보다 더 많은 액수를 냈었다고 기억하는 반면, 술집에서 마셨던 술의 양에 대해서는 더 적게 마셨다고 기억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이야기 하지요. ‘에이~ 딱 한 병밖에 안 마셨어’. 이 방면의 세계적인 권위자 하버드 대학의 다니엘 삭터(Daniel Schacter)교수는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우리 기억의 대죄 중 하나는, 자신의 입장을 좀 더 유리하게 하기 위해 편향적으로 정보를 취하고 있다’ 라고요. 우리가 기도를 하는 이유가 무언지 아십니까? 단순히 내가 원하는 것 이상의 것을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헌데 그것을 만나려면 먼저 수반되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자기 자신에 대해 제대로 바라보기’ 입니다. 있는 그대로를 긍정하면서 꾸미지 않아야 합니다. 하지만 요사이 사람들은 이를 받아들이기보다는 일단 변호부터 하려고 듭니다. 그래서 누군가 나에게 잘못을 지적하면 이런 소리부터 합니다. ‘그건 오해고, 억측이야’.. 물론 아예 틀린 말도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그럴 소리를 들을만한 그 무언가를 했었다면, 이제부터는 얘기가 달라지는데요.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그럼 우린 그동안 뭘 배웠을까요? 배운 것은 확실한데, 삶이 영 달라지지 않고 있다면, 변화되기를 원치 않다면, 그것은 왜 그럴까요? 많은 이들이 힘들게 사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배운 것이 침투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학점도 따고, 성적도 괜찮게 나왔을 지언정, 그 때가 지나면 반복하여 되새기지 않기에, 예전의 모습 그대로 돌아가는 것을 당연하게 놔두는데요. 그래서 2독서에도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곧 마음으로 믿어 의로움을 얻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습니다.” 하지만 대다수는 마음만 있거나, 또는 입으로만 신앙을 가지고 있기에, 지금과 같은 행동이, 반복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앞서 실험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들었던 정보를 자기 방식대로 받아들이는 이야기였습니다. 아마 학생시절에도 비슷한 경험을 하셨을 것입니다. 분명 선생님에게서 ‘어느 날에 소풍을 간다, 시험범위는 어디까지이다’ 라는 이야기를 한 자리에서 들었어도, 실제로는 소풍날 학교를 가고, 시험공부를 다른 범위에서 했던 친구가 있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렇다면 같은 이야기라도 본인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들었다는 얘긴데요. 실제와 다르게 말이지요. 혹시 주님의 말씀도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조심스럽게 여쭤보게 됩니다. 사실 하느님의 방식은 ‘사랑’ 이었습니다. 헌데 그 사랑을 풀어내는 방식이 너무 자기 위주라는 사실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배운 것보다는 협소하게, 할 수 있는 것보다는 훨씬 더 작게 행동하고 마는 모습들입니다.
사랑하는 목동 본당 교우 여러분
1독서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그들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 원래 남을 죽이려 했던 의도로 만들어진 창과 칼마저 농기구로 변화시키는 사랑을 보여주십니다. 마치 이것은 3차례에 걸친 바오로의 전교여행과 비슷해 보입니다. 바오로가 갔던 전교여행길은 실제로는 로마가 남의 나라를 침략하기 위해 닦았던 육로와 수로였습니다. 헌데 주님은 그 원래 의도마저 당신의 방식으로 변화시키십니다. 이른바 주님은 나쁜 것마저 좋은 것으로 변화시키시는데요. 그렇다면 우리가 당신에게서 배운 기본적인 것을 가지고 얼마나 제대로 된 꽃을 잘 피워내고 있는 지를 봐야 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