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9주간 화요일. 로마 5,12-21; 루카 12,35-38
우리가 완전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편하고 인정하기 힘든 것은 ‘내가 불완전하다’ 는 사실입니다. 깊이가 있길 원하지만, 생각이 짧고요. 남이 잘 봐주길 바라지만, 실수는 많고, 행동도 그렇게 깔끔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인정하기 싫기 때문인지, 우리 성당에서 고해성사를 보는 숫자가 많지 않은데요. 예전 독일 안덱스 수도원에 갔을 때 일입니다. 크지 않는 성당에 고해소가 성당 한 바퀴를 돌면서 12개 가량 있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 물론 죄사함을 받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중요하게 생각한 시대였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자신의 잘못을 통해 진정한 길로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의 가르침이었기 때문일텐데요.
오늘 말씀이 그러한 내용입니다. 독서의 내용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한 인간의 죄로 인하여, 인류에게 죽음을 안겨다주었지만 그것이 오히려 은총과 선물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생명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는 내용입니다. 만약 우리가 잘 살았다면,하느님 없이도 완벽하게 모든 것을 지키며, 잘못없이 살았다면 과연 문제는 없었을까요? 아무리 그렇게 했더라도 결국 우린 원죄를 만났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생활은 ‘내가 잘났다’ 는 오만함과 방자함이 도를 넘었을 것이고, 하느님을 우습게 봤겠지요. 결국 하느님의 영역을 침범했을 것입니다. 예전 바벨탑처럼 말이지요. 인정하긴 싫지만 우리의 모습 안에는 그런 면이 있습니다. 완벽하길 바라고, 문제없이 잘 할 것 같지만, 우리가 그렇게 완전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야기가 이쯤되면 듣는 분들에게 이렇게 물어봅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매번 악순환이 되풀이 되고 실수를 저지르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러면 대다수가 이렇게 답합니다. “더 노력해야 하겠지요” 하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노력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우리들의 불완전함은 우리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는데요.
당신께서는 불완전한 우리가 당신을 부르길 바라십니다. 청하고, 매달릴 때, 당신은 움직이실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처럼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있는 종들!” 이란 표현 속에서 우리의 역할을 보게 됩니다. 그 종은 기다리고, 준비하면서 여러 가지를 체크하고 검토하고 점검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간도 그런 시간이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만 내가 사는 이유를 알테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