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9주간 목요일. 로마 6,19-23; 루카 12,49-53
교우들에게 이렇게 물어봅니다. ‘기도를 잘하고 싶습니까?’ 그러면 들려오는 대답은 대다수가 ‘그렇다’ 고 답을 합니다. 이어서 ‘그러면 기도방법을 가르쳐 드릴까요?’ 라고 물으면, 대답하는 숫자는 훨씬 줄어듭니다. 그래도 몇 분만 대답을 합니다. 여기에 ‘제가 가르쳐 드리는 방법대로 해보실래요?’ 하지만 진짜 끝까지 시도하는 분들이 몇 %되지 않습니다. 이게 거짓말 같습니까? 왜 이런 결과가 나오는가를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묵상기도라는 것을 꾸준히 하기 힘들어 하십니다. 왜냐하면 당장에 들려오는 느낌이나 대답이 없다고 여겨서 그만 지쳐 떨어집니다. 그래서 대다수가 쓰는 방법이 뭔지 아십니까? ‘가라앉히기 방법’ 입니다. 주님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기보다, 잠시 내가 쉬어갈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는 것에서 멈춥니다. 하지만 이 분들에게도 문제는 다가옵니다. 즉 누가 이분들을 건드리면, 예전의 버릇이 바로 치고 올라옵니다. 특히 요사이 욱~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는, 자신 안에 쌓인 분노를 치료해온 것이 아니라, 그냥 강제로 눌러 앉혔기 때문에 곧 건드리면 폭발하는데요. 그래서 교회 내에서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 자기와의 싸움이란 도전을 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면, 영적인 양성이라는 과정은 그저 파괴적인 것이 된다.’ 고요. 왜냐하면 대다수가 자기와의 싸움을 원하지 않고 그냥 무탈하기만을 바라니까요.
오늘 복음은 그런 분들에게 알맞은 말씀입니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하시면서 집안이 사달이 난 듯한 광경이 펼쳐집니다. 대다수가 원치 않는 광경이라고 여길지 모르지만 실은 집안의 문제가 해결되길 바란다면 먼저 집안에 쌓인 문제가 뭔지 봤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건드리려고 하지 않다보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기’ 도 힘든데요.
평화를 바라는 삶은 어떤 것일까요? 이 말씀으로 대답을 대신할까 합니다. ‘지금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고싶어 하는 사람은, 그 대답을 얻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 지 주위를 살피지 않는다. 그들은 대신 자신들의 내면을 살핀다.’ 하느님은 이미 우리에게 답을 심어놓으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린 그 답을 얻기 위해 딱딱하게 굳어있는 내 마음이란 땅을 뒤집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뒤집어서 그동안 그 안에 뭐가 심겨있었나를 봐야 합니다. 내가 바라는 것에 가로막혀 진정 찾아야 할 것이 가로막혀 있지 않는가?를 보기 위해서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