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시몬과 성 유다(타대오) 사도 축일

2015. 10. 28. 오후 2:4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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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시몬과 성 유다(타대오) 사도 축일. 에페소 2,19-22; 루카6,12-19

  신앙생활을 하면서 바라보는 게 있습니다. 대다수의 신자분들이 신앙을 가지게 된 동기가 항상 바람직하진 않았다는 점입니다. 몇 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기복신앙의 형태입니다. 가령 바라는 것이 이뤄지길 원해서 오는 케이스입니다. 자신의 뜻을 펼치기 위해서 오는 형태입니다. 사회는 각박하고 내 맘대로 안되니까 교회생활을 통해서라도 자신의 뜻을 펼치려는 분들이 이 케이스입니다. 다른 교회에 실망해서 오는 형태입니다. 잘 다니던 교회가 문제가 생기거나 그곳 공동체 사람들과 맞지 않아서 오는 케이스입니다. 이 외에도 사실 많지요. 이런 것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걱정이 됩니다. 왜냐하면 교회라는 이곳도 여전히 사람들이 모여 있기에 갈등이나 분쟁은 있게 마련이고요. 교회의 뜻과 자기의 뜻이 일치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을텐데, 그때는 과연 어떻게 하실 것인가?’ 하는 염려 때문입니다. 대다수가 자기 자신은 변하지 않으면서 남은 변화되길 바라니까요.

  오늘 사도 축일을 맞이한 사람들도 그랬습니다. 예전 경력이 열혈당원이었던 시몬은 당시 로마 압제 하에서 버티기 위해, 젊은 혈기를 가지고 체제에 순응하기보다는 행동으로 옮긴 이였습니다. 그랬기에 좀 과격했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기적이나 말씀을 보며, 그분이 보여주신 힘이 자신의 뜻을 이뤄주리라 여겼을 것입니다. 이른바 예수님을 통해 덕 좀 보고 살려고 말이지요. 물론 시작이 그다지 바람직스럽지 못하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얼마 안 있어 변화됩니다. 시작은 비록 그랬을지라도, 그의 마지막은 순교를 통해 주님의 뜻을 실천하는 참다운 사도로 변화됩니다. 자기가 가진 의도는 죽이고, 그 분이 원하신 뜻대로 녹여내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이제 우리들을 바라봅니다. 신앙을 가진 이유가, 그저 내 뜻을 이루고 만족시키기 위해서라면 여러분은 사도들, 순교자들, 성인이 보여준 신앙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 것입니다. 매번 변화를 두려워하면서, 전과 다름없는 똑같은 삶이 계속 이어질 것이고요. 그 속에서 해방감은 느껴지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시작은 모범적이지 않았더라도 주님으로 인해 변화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예전의 그분들 못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잘 선택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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