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33주간 목요일. 1마카 2,15-29; 루카 19,41-44
살면서 꼭 내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을 만나게 됩니다. 나한테 뭔가 제안이 들어오지만, 영 내키지 않고 불편해서, 쓰윽 밀어버리고 싶을 때가 있는데요. 어쩌면 요사이 나오는 독서, 복음 말씀이 그렇습니다.
독서에서는 배교를 강요하는 임금에 항거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게다가 같은 백성이 배신하는 행동을 보면서, 그를 죽이는 살육장면이 나옵니다. 이쯤되면 우리의 표정이 편치만은 않습니다. 그중에는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해? 적당히 하면 안 돼?’ 하는 의문이 듭니다. 일단 상황이 불편하니까요. ‘안 그래도 밖의 일도 힘든데, 종교까지 이렇게 할 필요있어?’ 라는 생각도 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지, 성경을 읽을 때 저지르는 안 좋은 습관이 있는데요. 그 나쁜 습관이란, 내가 좋아하는 구절만 따로 떼어서, 그것만 보려는 방식입니다. 하느님의 본 의도와는 별 상관없이, 내가 좋아하는 단어, 구절에만 머뭅니다. 사실 우리가 하고 있는, ‘복음 나누기 7단계’ 의 좋은 점이 있습니다. 어려운 말씀이 생활속에 젖게끔 하려는 의도에서는, 처음 말씀에 입문하려는 이에게는 좋은 방식입니다. 하지만 한계도 보입니다.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내가 좋아하는 것에만 머물려다보니까, 말씀을 내 마음대로 편집합니다. 좋아하는 구절만 따로 떼어내고, 나머지는 두 번 다시 보고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하느님을 부분적으로만 알게 됩니다. 얼마 전, 청년들에게 주님의 수난부분을 기도시키면서 발췌한 장면은, 헤로데 앞에서, 빌라도 앞에서 침묵하는 주님이었습니다. 죄가 없다고 항변할 만도 한 데, 당신이 쓰신 무저항, 비폭력 방식이, 젊은 그들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오늘 주님은 우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오늘 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그러나 지금 네 눈에는 그것이 감추어져 있다.” 평화는 희생과 과정의 시간이 만들어냅니다. 세상도, 교회도, 믿음도 그렇습니다. 누군가는 짊어져야 합니다. 누군가는 소리쳐야 합니다. 하지만 대다수가 ‘누군가’ 가 되려고 하지 않습니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돼?’ 하는 정신이 실은 우리를 망쳐놓고 맙니다. 불편함 속에서 제대로 된 선택을 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잘 살 수 있으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