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왕 대축일.

2015. 11. 21. 오후 7: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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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왕 대축일. 다니엘 7,13-14; 묵시록 1,5-8; 요한 18.33-37

  여러분께 질문을 드리면서 시작할까 합니다. 여러분의 왕은 누구입니까?’ 이미 계명에는 우상을 섬기지 말라라고 하셨지만, 각자 나름의 왕이 있는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10대 청소년에게는 아이돌 스타와 성적이 왕이요, 2-30대는 엄청난 스펙이 자신을 돋보이게 해주는 왕이요, 그 너머에 계시는 분들은 돈이 우리들의 왕처럼 군림합니다. 하지만 자신이 모시고 떠받들고 있는 왕... 과연 예전에도 왕이었습니까? 우리의 모습을 가만히 보면 주님의 말귀를 잘 못 알아들으면서 나름대로 사는 듯 보여집니다.

오늘 복음의 대화가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빌라도 앞에 와 심문을 받습니다. 그런데 빌라도의 대화를 들여다보면 예수님의 말 귀를 못 알아들으면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아무튼 당신이 임금이라는 말 아니오?” 총독이라는 사람이 왜 이런 태도를 보일까요? 귀찮아서 그랬을까요? 빌라도는 지금 자신의 지식의 한계에 가로막혀 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대다수 사람들은 자기가 아는 선에서 받아들이기에, 모르는, 자신의 차원을 벗어나는 것을 만나면, 그 때부터 대화가 흐트러지는 것을 봅니다. 즉 자신이 알던 지식을, 자신의 왕으로 삼으며, 지식을 받쳐주는 이성을 자신의 왕녀로 삼습니다. 빌라도처럼 자기가 보고, 듣고, 배운 것만 받아들이려는 사람은 어쩔 수 없는 한계를 드러내게 되어 있습니다. 그 이상의 것은 경험해 보지 못하였으니까요. 그러기에 예수님이 말씀하신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라는 말을 아무리 말해 못 알아듣는 것입니다.

  사실 많이 알기 위해, 대학원도 가고, 멀리 유학도 가서 석·박사 학위도 땁니다. 그러나 결국 아는 것은 많아졌을 지 언정, 깨달음과는 거리가 점점 멀어집니다. 참다운 공부는 지식추구, 학위 취득이 아니라 자신의 위치를 더듬으면서 가는 것이 진짜 공부인데, 많은 이들은 공부보다는 정보 습득에 더 치중을 기울이는 듯 합니다. 정보란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니지요. 그저 남이 해준 이야기를 가졌을 뿐입니다. 그럼 참다운 깨달음은 무엇일까요? 지금의 내가 들은 것을 소신껏 소화하고, 받아들인 정도를 살며시 밖으로 실천해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여기 앉아 계신 여러분들은 그래도 밖에 있는 사람들보다는 뭔가를 보셨기 때문에, 뭔가에 대한 갈증을 느끼셨기에 여기 오셨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나라는 어떠한 나라입니까? 1독서에 나오듯이 그의 통치는 영원한 통치로서 사라지지 않고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않는다.” 는 나라요, 주님은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으며 또 앞으로 오실 전능하신 주 하느님께서 나는 알파요, 오메가다 라고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알파요, 오메가. 당신은 처음과 끝을 주관하십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대다수가 자신의 경험치에서만 사람과 사물을 봅니다. 마치 지금이 내 생의 전부라 생각하기에 판단도 멀리까지 내다보지 못하는데요. 하지만 우린 그 너머를 보는 초월적인 눈을 가져야만 합니다. 그래야 참다운 주님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데요. 오늘 복음 마지막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진리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내 목소리를 듣는다.” 여러분은 얼마나 알아들으십니까? 요한복음 1장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말씀이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몸은 비록 성당에 와 있다하지만, 자기 자신을 보자면 진리를 따르지 않는 분들도 있고요. 그분을 알아보지 못한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우리에게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알아보지 못한 우리의 무지(無智)가 문제일 수 있지만, 일부러 드러내 보이지 않으려는 하느님의 다스림의 방식을 또한 이해해야만 합니다. 이것이 그분의 통치방식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다 하시면서도 아무 것도 하지 않으시고, 아무 것도 하지 않으시면서 하지 않는 일이 없으신 분처럼 사십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그 분의 목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는 힘을 스스로 키우길 바라십니다. 강요하지 않는 통치, 군림하지 않는 왕이 그분의 모습이십니다. 그러면서 그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세상은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목동 교우 여러분!

  그 분의 통치방식을 헤아릴 때, 내가 가진 한계에서 벗어나 당신의 뜻을 헤아리면서 그 분의 뜻을 맞춰갈 수 있는 감각을 지닐 수 있습니다. 그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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