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32 주간 토요일. 지혜서18,14-16;루카 18,1-8
신앙인에게 기도하는 문제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끊임없이 따라다녔던 문제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는 뜻으로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분명 기도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중요하게 다가온 문제였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자세를 갖고 기도를 해야 할까요?
보통은 복음의 비유에서는 모범적인 신앙인이 등장하면서 ‘너희도 열심히 기도해야 한다.’ 하시는 것이 당연할진대, 오히려 오늘의 주인공은 ‘어떤 고을에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재판관이 있었다.’ 라면서 신앙인과 영 관계가 없는 사람이 나옵니다. 마치 약은 청지기를 비유의 주인공을 쓰셨던 것처럼, 꼭 신앙인에게서만 그 모델을 찾지 않았던 예수님의 모습이 신선합니다. 그렇다면 그 완고한 재판관이 변화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얼까요? “저 과부가 나를 이토록 귀찮게 하니 그에게는 올바른 판결을 내려주어야겠다.” 에서 답을 찾을 수 있겠습니다.
예전 어느 신부님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왜 저의 기도를 하느님이 들어주시지 않지요?” 라고 어느 신학생이 묻자, 그 신부님은 “네가 정말 모든 힘과 마음을 다 바쳐서 기도를 했는 지 잘 살펴봐라” 하고 답하셨습니다. 기도 중에 괜한 의심이나 분심이 들었다거나, 몸과 마음을 함부로 대했다거나, 기도와 생활이 분리되지는 않았는가? 를 다시 살필 때, 진실한 신앙인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요즘 젊은 친구들의 연애를 하는 패턴을 보면, 예전 여러분들이 데이트를 했던 시대보다는‘열렬함이 없다’ 는 것을 봅니다. 자기에게 조금만 서운하면 쉽게 토라지고요. 무언가를 주었는데 당장 받지 못하면 관계가 식었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데이트 비용 문제도 이젠 남자가 다 내지도 않습니다. 훨씬 예전보다 계산적인 방법으로 서로를 대하고, 손해 본다고 느끼면, 관계를 정리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깁니다. 여러분들은 부부생활을 하고 계시기에 잘 아십니다. 사랑의 삶이 순탄치만은 않다는 것을요. 서로가 부대끼며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사랑이란 내가 하고 싶은 것만 요구해서도 안 되고, 그 사람이 받아들일 시간과 계속 무언가를 해주는 정성이 필요하다’ 는 사실입니다. 그런 사랑이, 삶에서 신앙 속에서 잘 연결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