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1주간 화요일. 이사11,1-10;루카10,21-24
얼마 전, 학교 선생님을 하고 계신 자매님께서 이런 나눔을 해주었습니다. 요즘에는 그런 아이들을 찾기 힘든데, 당신이 맡은 반 그 아이는, 몸에서 냄새가 많이 나는 어려운 아이였답니다. 본인도 후각이 민감하기 때문에, 그 아이를 대하기 힘들었다는데요. 어느 날, 그 아이는 자기가 먹던 빵을 손으로 떼어서 선생님인 그 자매님에게 주더랍니다. 일단 받아먹기는 했지만, 참 힘들었었다고 토로하면서, ‘내 사랑이 이것 밖에 되지 않던가?’ 하는 울음 섞인 나눔을 해주셨는데요. 저는 그 울음 속에서 나중에 만나게 될 희망을 보았습니다. 단순히 알고 있던 그 사랑이, 예전보다 커져있을 희망을 말이지요.
오늘 독서에 “늑대가 새끼 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지내리라. 송아지가 새끼 사자와 더불어 살쪄가고, 어린아이가 그들을 몰고 다니니라.” 라고 나옵니다. 헌데 이 말씀이 어떻게 들리십니까? 결혼을 앞둔 분들과 면담을 하게 되었을 때, ‘왜 그 많은 남자 중에서 이 분과 살려고 하십니까?’ 라고 물으니, ‘저만의 내 편이 생겼으니까요’ 라고 답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자기 말을 들어주는 누군가가 생긴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지요. 하지만 우리가 만나야 하는 사랑은 편을 가르면서 얻는 사랑은 아니지요. 앞서 독서 말씀이 말도 안 되는 것 같지만, 실은 거기에서 주님의 의도를 찾을 수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그 의도의 방향은, ‘내가 원한 것과 처음에는 달라 보일 수 있다’ 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복음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행복하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려고 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들으려고 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 그렇다면 주님이 보여주시고, 들려주신 것이 무엇이었나요?
단적으로 말한다면, 내가 가지고 있고, 알던 사랑만이 최고는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 때, 주님의 사랑 방식을 통해 나는 더 크고 깊어질 수 있게 됩니다. 앞서 그 자매님의 나눔처럼, 처음에는 어려운 아이의 사랑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본인의 한계를 바라보면서 만나야 할 사랑을 볼 것이구요. 처음에는 내 편만을 찾던 사랑이, 참 사랑을 만나면서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사랑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사랑에서 머물지 말고, 주님의 더 큰 사랑을 맛보면서 변화되어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