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2주간 목요일. 이사 41,13-20; 마태 11,11-15
몇 년 전, 고등학교 졸업한 지 처음만에 저를 가르쳐주셨던 선생님을 만나뵈었습니다. 벌써 그렇게 되었나 싶기도 하면서 그동안 별 탈 없이 잘 지내곤 있지만, 지금의 저를 만들어주신 그분께, 지금의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이 그동안받은 가르침의 보답인 것 같아 만남의 시간을 가졌던 것입니다. 처음에 전화를 드리니 대뜸 선생님의 반응은 이러하였습니다. “오~ 오리 궁뎅이?” 별로 히프 라인도 살아있지 않은데,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반가웠습니다. 제자를 기억하고 있었다는 사실을요. 아마 선생님의 마음이 그러하듯, 진정한 교사이신 주님의 마음도 우리를 항상 기다리고 계실 것입니다.
오늘 1독서의 모습이 그런 당신의 모습으로 일관된 모습이 나옵니다. “두려워 하지마라.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 나 주님이 그들에게 응답하고 나 이스라엘의 하느님이 그들을 버리지 않으리라” 당신은 그렇게 우리의 목소리를 기다리셨는데, 우린 자꾸 딴 곳만 바라보며 그곳에서 만족하며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가끔 다른 이들을 통해 듣는 이야기가 나의 앞길을 다시 바라보게 해주듯이, 내가 어떻게 당신과 연결되어 있는가를 바라보는 자세가, 지금의 나를 일으켜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무언가를 안다는 사람들이 오늘 복음처럼 행할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하늘나라는 폭행을 당하고 있다. 폭력을 쓰는 자들이 하늘 나라를 빼앗으려고 한다.” 는 말씀처럼, 자기네만 알고 있는 것을 누구에게도 알려주지 않는 모습입니다. 공부하는 사람들은 두 가지를 이뤄야 합니다. 하나는 열심히 스승에게 배우는 것이고, 또 하나는 자기가 얻은 것을 누군가에게 알려주는 것 이 두 가지를 해야 합니다. 어느 것 하나에만 머물러 있는 삶은 메말라 갈 뿐이고, 자기가 부족한 것을 알더라도 무언가 알려줄 때 나에게 진정 부족한 것, 채워야 할 것도 알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율법학자들은 자기네만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며 문을 열어주려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모습은 현재 어느 수준입니까? 그 수준이 우릴 새로운 형국으로 만들어 줄 수 있는데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