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회의 수호자 원죄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천주교 교우이지만 부인(婦人)감을 얻기 위해 한 때, 어쩔 수 없이 매주 마다 개신교로 출근도장을 찍어야 했던 이가 이런 얘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마태오 복음 12장에 보면 예수님을 찾으러 온 성모님과 가족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이렇게 반문하십니다. “누가 내 어머니이고 내 형제들이냐? 당신의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이 대목을 들면서 그 곳 목사님은 이렇게 설교했답니다. ‘봐라~ 예수님도 마리아를 이렇게 대접했었다.’ 하지만 우린 성모님을 참 어머니요. 원죄마저도 없는 분이라고 오늘 대축일까지 지내고 있는데요. 여러분이 알고계신 성모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요사이 대림시기를 맞이하면서 판공성사의 죄를 들으면서 답답한 현장을 목격합니다. 우리가 이미 지은 죄에 대해서 ‘제 탓이요’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만, 실제로는 고해소 안에서도 자신의 죄에 대해 물을 타면서 희석시키거나, ‘나도 인정을 하겠지만 그 사람으로 인해 이 일이 빚어졌다’ 는 쌍방과실로 몰고가는 현장을 봅니다. 오늘 독서가 꼭 그러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독서에 하느님은 아담과 하와를 찾으시면서 묻습니다. “네가 알몸이라고 누가 일러주더냐?” 아담은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께서 저와 함께 살라고 주신 여자가 저에게 주기에 제가 먹었습니다.” 하와는 “뱀이 저를 꾀어서 제가 따 먹었습니다.” 자신을 변호하는 방식이,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는 모습이 어떻게 들리십니까? 나에게 닥쳐온 사안에 대해 어떻게 답해야 할까요? 오늘의 주인공인 성모님을 봅니다. 물론 천사가 해주는 말이 이해되지 않았을 것이고, 다가올 미래도 불안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분은 우리와 다른 것이 있었습니다. 그 불안함 가운데에서도 당신은 나를 살려주실 분이라는 사실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랬기에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라고 응답합니다.
작년 이 맘 때의 성당 마당을 우린 기억합니다. 공사하느라 다 뜯겨지고 그야말로 휑했습니다. 누구는 성모님을 지금 위치가 아닌, 거리 밖에서도 보이는 장소에 지나가다가 보이길 원한 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주임신부님께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항상 성당에서 기도하는 교우들을 위해 성모님께서 우리 교우들을 바라보며 기도해주시도록 지금 장소에 세워주십시오’ 라고요. 성모님은 말없는 와중에서 예수님을 위해 기도하셨고, 지금은 우리를 위해 대신 빌어주십니다. 그런 신심이, 원죄없이 잉태되는 신비를 통하여 주님을 살리셨고 당신도 사셨고, 우리 또한 세례를 통해 원죄에서 벗어나는 은총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고마우신 성모님을 제대로 대접해 드리면서, 그 분의 신심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