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2주간 토요일. 집회 48,1-11; 마태 17,10-13
같은 집안을 위한답시고 오히려 하늘의 도리에 어긋나는 사항에 눈을 감는 사태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해 보입니다. 요 근래는, 법정에서 아는 사람을 도와준답시고 증인으로 나와서 진술을 번복하면서 참된 것에 눈을 감는 현장이 발생되고 있고요. 정약용 때는 유배지에서 두 아들에게 이런 편지 내용을 써줍니다. “우리 집 종이 전해준 이야기를 들으니, 어떤 소년이 두 집안의 상주들과 함께 무뢰배들을 모아 계집종의 남편 집에 찾아가 여종을 찾느라, 주먹으로 때리고 발길질을 했다는데 참으로 놀랄 일이다. 이제 떼거리를 지어 마을 거리를 횡횡하면서 이따위 못된 짓을 계속하고 있다니, 머지않아 도적이 될 것이 뻔한 이치다. 너희도 그자들과 인척관계가 있다하여 멀리 끊어버리지 않는다면 장차 큰 낭패를 당할 것이다. 무릇 폐족(廢族)이라는 것은 - 폐족은 조상이 큰 죄를 짓고 죽어서 그 자손이 벼슬을 할 수 없는 집안을 말합니다. - 서로 동정하는 마음을 품고 있게 마련이어서 서로 관계를 청산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부디 마음에 새겨 의지를 굳게 지켜라” 라고요. 여러분은 참된 것에 눈을 감으십니까? 아니면 어떤 목소리라도 내시는지요.
오늘 복음은 세례자 요한을 함부로 죽인 이야기에 대해 주님의 담담한 말씀이 이어집니다. 그의 잘못이 없다는 것을 다 알고서도, 사람들은 그를 죽이고야 맙니다. 나중에 예수님도 그렇게 되시지요. 저는 이런 것을 보며 사람들이 참 무섭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사안을 접했을 때 그것을 풀어내는 방식에 있어서, 자기와 연결된 것을 끊을 줄도 아는 방법을 쓰기보다, 어떻게든 자기와 연결된 것을 이어놓고 판단하는 습성입니다. 이 습성에 대해 문제의식조차 없다보면 자기와 다른 것에 대해서도 귀를 기울이지 않기 쉽습니다. 별로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사람은 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괴물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자신이 괴물이라는 것을 자기가 깨달았을 때는, 이미 남들은 그를 포기하고 있고요. 기대를 접고 기억에서 잊혀지고 있을 때라는 점이지요.
가끔은 우리에게 속했던 것을 떠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내가 갖고 있는 것들이 정말 소중한 차원인지 아니면 버려야 할 것인지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께서도 잘 선택하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