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주간 화요일. 1사무 16,1-13; 마르 2,23-28
우리는 평소 어느 것을 삶의 기준으로 두고 세상을 판단합니까? 그 결정과 판단이 항상 올바르지 못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거기에 머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늘 독서에서 하느님께서는, 사무엘을 통해 사울을 대신해서 왕위를 이어갈 인물을 고르십니다. 그러나 그는 사울처럼 건장하고 키가 큰 힘 있는 청년이 아니었습니다. 이새의 마지막 아들인 다윗은 볼이 붉고 눈이 반짝이는 잘생긴 아이였다”고 말함으로 그 아이의 연약함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사무엘과 이새 역시 다윗은 너무 어렸기 때문에, 그 아이가 왕이 될 것임을 짐작하지도 못했습니다. 사무엘이 이새의 큰아들을 보고 왕으로 삼으려고 했다거나, 아버지 이새가 막내를 제사에 데려오지 않은 것만 보더라도 알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이러한 인간의 생각 앞에 “겉모습이나 키 큰 것만 보아서는 안된다. 나는 이미 그를 배척하였다. 나는 사람들처럼 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지만 주님은 마음을 본다.”고 하시면서 사람들의 생각을 잡아주시는데요. 이 말씀은 마치 고린토 1서 1장 27절에서 28절의 “하느님께서는 지혜 있다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어리석은 사람들을 택하셨으며, 강하다는 자를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약한 사람들을 택하셨습니다.” 라는 말씀을 연상케 합니다. 이와 비슷한 얘기를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선택하는 과정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대부분 배우지도 못하고, 미천한 신분인 어부나 세리였습니다. 하긴 예수님이 세상에 오실 때에도 화려하게 오시지는 않으셨으니까요.
이는 분명 우리의 상식과는 많이 어긋나 보입니다. 우리는 보통 상식적으로만 판단하려 듭니다. 하지만 상식은 일반적인 상황일 뿐, 절대화될 수는 없습니다. 성체를 공경하는 우리들의 모습도 그렇습니다. 성체는 믿지 않는 이들의 눈에는 그냥 빵으로만 보일 뿐이지만, 믿는 이들에게는 상식을 넘어서는 희망으로 만나고 있습니다. 그 희망은 내 생각의 틀을 깨게 만들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을 지니며, 그 힘은 하느님 앞에서 겸손된 자세를 가지게 만듭니다. 신앙은 이성을 넘어섭니다. 그 힘을 믿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나의 생각에 갇혀 지내지 말고, 참된 것을 바라볼 줄 아는 사람으로 거듭나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