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봉헌 축일

2016. 2. 1. 오후 6:19:06

글자

시작 전~ 주님봉헌축일을 맞이하여 개인적으로 초를 준비하신 분들은 초를 들어주십시오.


주님 봉헌 축일. 말라 3,1-4; 루카 2,22-40

  조선시대 영조 정조 시대에 울진에서 현감의 자리까지 밖에 올라가지 못한 우리에게는 이름이 낯선 성대중이란 유학자가 있습니다. 175319살의 나이로 진사시에 급제한 그는 일본통신사로도 활약을 하였고, 문장과 필력에 힘이 있고 당대의 문장가로 높은 추종을 받았지만 결국 지방 관리직으로 벼슬생활을 마감합니다. 그 이유는 그의 신분출신이 서얼 출신이었기 때문인데요. ‘비교의 기준이라고 글을 편집한 사람이 붙인 소제목에는 그의 이런 글이 나옵니다. 음식이나 의복, 수레와 말, 거처는 저만 못한 사람과 견주고, 덕행과 언어, 문학과 정사는 자기보다 나은 쪽과 견준다.’ 좋은 차를 탔다고 나의 격()이 높아지는 것이 아니지요. 으리으리한 집에 산다고, 사람까지 고상해지지는 않습니다. 나도 저렇게 본받을 만한 사람이 되어야지~ 하는 마음과 이를 뒷받침하는 노력이 맞물릴 때에야말로 사람은 한 단계 발전할 수 있는데요. 앞서 미사 전에 초를 축성하는 예절을 했습니다만, 세례식 때에도 초를 켭니다. 종신서원을 받는 수도자, 부제, 사제 서품을 받는 성직자들 예식에도 초를 겹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하지요. “여러분도 빛의 아들 딸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오늘은 주님 봉헌 축일을 맞이하여 주님께 우리 자신을 봉헌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요? 어떻게 하면 주님처럼 밝은 빛을 뿜으며 살 수 있을까요?

  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그는 제련사의 불 같고, 염색공의 잿물 같으리라.” 모든 것을 녹여내고 다시금 일으킬 만한 무언가가 있어야 하는데요. 마치 복음에 시메온 예언자처럼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던 그의 모습처럼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고 잘 만들어 가야 합니다. 그런데 대다수 사람들은, 무언가를 받을 요량으로만 살려고 합니다. 하지만 받으려는 은총도 중요하지만 실은 그 은총을 받을만한 그릇이 되어있는 지도 살펴봐야만 받은 은총이 제대로 된 결실을 볼 수 있는데요.

  옛날 사람들도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몸부림을 치며 살았었습니다. 사람구실 제대로 하려고 말이지요. 우리가 주님께 무상으로 생명을 받아 태어났다면 이를 잘 돌려드리려는 자세를 어떻게 갖출 수 있을까? 하는 스스로를 향한 질문을 통해 더 나은 삶이 될 수 있도록 자기 자신을 잘 돌봐야 하겠습니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